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0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6번 사순절 (3)
(인도자)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회중)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인도자)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회중)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인도자)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회중)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인도자)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회중)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인도자)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회중)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인도자)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회중)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다같이)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시 25:1-10)
송영 _ 찬송가 1장 만 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48장 영화로운 주 예수의
말씀 _ 요한복음 2장 13~22절
오늘의 말씀을 커다란 문맥 안에서 살펴보면 ‘더 큰 일들’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장 1절부터 5장 47절까지가 이에 해당합니다.
1. 두 개의 “표적들”(2:1-11; 4:46-54)
2. 성전 정화(2:13-22)
3. 예수의 니고데모와의 대화(3:1-21)
4.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4:4-42)
5. 요한에 대한 또 한 번의 새로운 증언(3:22-36)
6. 베데스다 연못 옆에서의 한 사람의 치유(5:1-9)
이 모든 사건들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들, 남자와 여자들이 모두 예수께서 말하고 행하는 “더 큰 일들”을 보고 듣게됩니다.
물론, 이 장면들을 보고 듣는 제자들과 무리들의 반응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한 “더 튼 일들”은 무엇이었나요?
예수께서 시작하시는 것은 기적적이고, 새로운 어떤 것이고, 전부터 있던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들의 시작과 끝 그리고 반복해서 읽고 듣다 보니 전혀 새롭지 않은 그저 기계적인 믿음의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는지요?
사순절의 의미는 바로, 그 새로움을 위한 절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하시고자 하셨던 “더 큰 일들”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또 그 장면들을 마음 속 깊이 다른 것과 섞이지 않도록 기도할 때 우리는 새로움, 전혀 다른 그 일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매 순간 경이로움으로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전에서의 예수의 행동(14-17절)이며, 다른 하나는 성전의 멸망에 관한 예수의 발언입니다.(18-22절)
예수께서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온 유대인은 유월절이면 반드시 ‘성전’으로 모였습니다. 그들의 전통이요. 그들이 유대인이 이유가 유월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에서 유월절 제사를 드렸습니다. 유월절의 가장 중요한 의식은 “희생제사”였습니다. 이 제사에 사용되는 희생제물은 소, 양, 염소, 비둘기 중 흠이 없고 정결한 1년생이어먄만 했습니다. 이방이나 먼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은 가축을 가져오기가 어려웠고 예루살렘에 와 ‘제물’을 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제물은 제사장이 흠이 없다고 지정한 것만을 사야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전체 제물을 주관하는 대제사장은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었고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관례”였던 것입니다.
이 “관례”를 이상하게 여긴 이가 없었습니다. 성전 앞에서 이루어지는 이 “행위”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선 이를 보시고 그들 모두를 “성전” 밖으로 내쫓으셨고 그들의 상을 엎어 버리셨습니다. 엄청난 사건, 벼락같은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들을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예수의 이 행동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은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들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성전’이 아닌 지 오래라는 것을 말입니다.
분명, 희생제사엔 ‘희생제물’이 필요합니다. 먼 곳에서 오는 많은 이들도 정성껏 희생제물을 준비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가축을 사야만 했을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emporion)을 만들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제물”을 사는 행위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목적은 “깨끗한 성전”에 있지 않고 완전하게 “다른 성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성전”을 바라십니다.
그런데 그 때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들을 행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 위해 무슨 표적을 보여줄 수 있소?”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우리가 예상했듯이, 사람들은 매우 종교적인 그 축제에서 자기들의 예배 의식을 방해한 것에 대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은 예수로부터 “표적”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께서 이미 2:11에서 표적을 제공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표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신 표적은 “성전을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입니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다시 묻습니다. “이 성전은 사십육년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그것을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오?” 당연한 반응입니다.
우리라고 알았을까요?
그래서 요한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자기 몸을 가리킨 것이며,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였으며 성경과 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Craig Koester (Symbolism in the Fourth Gospel)는 문학적이고 문화적 맥락에서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희생제사가 영원히 종식되고, 그 자신의 죽음이 그것을 대신 할 것을 미리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죽음과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어린 양들이 죽임을 당하는 유월절 축제동안에 일어났다. 예수는 2년 후 유월절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다(요1:29). 만약 가나에서 물의 변화가 예수의 죽으심이 정결의 새로운 수단임을 알려주는 것이라면, 성전에서의 상업의 중단은 속죄와 정결이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서 완성될 때를 예기한 것이다.
둘째, 예루살렘에서 성전은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이나 영광이 거주하기 위해 만든 장소였다.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으로만 제한된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성소는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거처로 이해되었다. … 새로운 성전에 대한 예수의 약속은, 가나에서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건물에서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명시될 것을 암시한다.
셋째,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제까지 성전이 해왔던 통일적 상징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pp. 83-84]
말씀을 처음부터 떠올려 정리해 보면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요. 건물로써 ‘성전’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영광은 이제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성전이요. ‘성전’이 해 왔던 일은 ‘예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전’입니다. 정확하게는 ‘성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성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야 합니다.
이 사순절기에 우리 안에 ‘소와 양과 비둘기, 바꾸려는 돈’을 모조리 치우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찬양 _ 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