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53번 시편 121편
(인도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회중)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회중)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인도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회중)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회중)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1-8)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20장 1~18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요한복음 20장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중심으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무엇인가? 묻는다면, 분명 이 단어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부활’, 우리의 종교는 ‘부활’을 믿습니다. 많은 종교들과 다른 점이 바로 ‘부활’일 것입니다. ‘부활’은 다른 의미로는 ‘영생’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이유,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으면서도 ‘믿음’을 지켰던 이유가 바로 ‘부활’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0장은 우리가 ‘부활’이라고 부르는 그 사건을 전하고 있으면서도 ‘부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부활’을 ‘부활의 이야기’로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전해질수록 더욱 그 의미가 확대되고 또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세대를 넘어, 시대를 넘어,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 ‘이야기’‘Story’의 힘입니다.
요한복음 20장의 부활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빈 무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빈 무덤 뿐입니다.
지난 금요일, 예수님께서 믿을 수 없게도 우리의 눈 앞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밤 늦도록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목숨을 다해 수습하여 분명, 몰약과 침향으로 무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분명 커다란 돌, 그 커다란 돌로 무덤의 입구를 단단히 막았지요.
그리고 다음 날은 안식일이니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아시는 것처럼 안식일, 특별히 예수님이 죽으시고 난 후 안식일은 더욱 침묵이 흘렀습니다. 모두에게 두려운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안식일이 지났으니 서둘러 무덤으로 가봐야 하겠습니다. 아직, 어두울 때이지만, 더 서둘러 무덤으로 가야겠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가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곁으로...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인이 아직 어두울 때,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주간의 첫날 일찍이 아직도 어두울 때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무덤에서 돌이 옮겨진 것을 보았다.” (요20:1)
사도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을 처음 보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빈 무덤’의 이야기를 처음 전한 그녀의 이름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호수 서쪽 막달라 출신이라 하여 막달라 마리아라고 불렸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은 누가복음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누가복음 8:1~3)

누가에 따르면 그녀는 막달라 출신으로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었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렸다는 이야기는 그녀가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려 왔으며,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귀신 들린 여인, 그저, 미쳤다는 이야기로는 설명이 부족하여 일곱이라는 숫자를 달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은 만나고 달라졌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렇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곁에서 자기의 소유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마리아입니다.
다시 살아난 여인, 막달라 마리아, 그러니 그녀는 아직 어두울 때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곁으로 가고 싶었던 것일지로 모릅니다. 무엇을 하러 가려는건지 그녀도 모른 채 그녀는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빈 무덤, 아직 어두울 때에 찾아 간 그 무덤이 비어있습니다.
그녀가 다시 돌아 뜁니다. 제자들을 찾아 그녀가 달려갑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알고 계신가요?”
“예수님을 어디에 모셨는지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그 때, 그녀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마리아와 함께 무덤을 찾아갑니다.
역시, 무덤이 비었습니다. 베드로는 무덤의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무덤의 안 쪽에는 예수님의 수건과 세마포만 놓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 둘은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울었습니다.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제자들은 아무 말 없이 무덤을 떠나고 그녀만 혼자 남아 무덤 밖에서 울고 있습니다.
눈물... 예수님의 무덤에서 그녀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사실, 막달라 마리아는 많은 사연의 주인공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그녀를 향해 쫓아 다녔을지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일곱귀신 들렸었다는 이야기는, 그녀를 죄 많은 여인으로 만들고, 베드로조차 그녀를 ‘창녀’라고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울었을까요?
그 때, 다른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가져갔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녀의 눈물은 예수님을 향한 눈물입니다.
그녀의 눈물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의 향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발에 순전한 향유를 쏟은 마리아, 그녀들이 예수님 앞에 그녀들의 순전함(integrity)을 쏟아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이 무어라 불러도 나는 ‘나’입니다. 마리아는 우리가 그녀를 무엇이라 불러도 그녀 자신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한 그 무엇도 상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던지,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던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중요한 것은 나를 온전히 알고 계시는 분, 마리아가 고백했듯이 “나의 선생님!” 우리에게 나의 예수님이 계시는가?입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순전한 눈물이길 기도합니다.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 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 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닌 것도 오직 이 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빈 무덤 앞에서 눈물을 쏟은 마리아를 통해 부활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내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에게, 또 다른 제자들에게,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늘, 우리에게도 부활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복음' 'Good News'입니다.
오늘, 우리가 빈 무덤 앞에 서기를,
우리의 눈물을 드리길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