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34번 부활절(2)

(인도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회중)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인도자)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회중)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인도자)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회중)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인도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회중)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9-20)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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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70장 내 주님은 살아계셔

말씀 _ 요한복음 20장 19~29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요한복음 20장에는 세 번의 부활출현기사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부활절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이고, 두 번째는 부활절 저녁에, 세 번째는 8일이 지나 오늘의 본문 말씀에 등장합니다. 이 출현 모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네 번째 출현이자 마지막 출현은 21장에 등장합니다. 그 사건은 갈릴리의 디베랴 바다에서 이루어집니다.

부활과 다시 나타나심, 지난 부활절 이후 8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의 본문말씀과 같은 시간의 흐름입니다.

부활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 예수의 부활』이란 책의 저자(Pinchas Lapide)는 유대인 신약성서학자입니다. 그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보기에,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의 증거는 제자들의 변화된 삶에 있으며 그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빠진 사도의 무리들이 절망에 빠져 갈릴리로 도망하려고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하는 그 때에, 자기들의 스승을 넘겨주고 부인하면서, 가련하게도 스승을 따르는데 실패한 농부들과 목자들, 그리고 어부들이, 하루 밤 사이에 확신에 찬 선교공동체로 바뀌어 구원의 확신 가운데 부활 전보다 부활 후에 훨씬 더 많은 성공을 거두는 일을 한다. 그렇다면 환각이나 환상으로 이런 혁명적인 변화를 설명하기가 충분하지 않다 [p. 125].”

우리의 공동체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을까요?

우리를 통해 세상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될까요?


말(씀)(Word)을 믿는 것

요한복음 1:1부터 적어도 20:31까지 요한복음은 말씀에 직면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성육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계시하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임재는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 계시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임재는 심판이 됩니다.

둘째로, 31절의 “이것(들)”은 기록된 표적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가 있지만, 아니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것의 결론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전체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었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도마-질문하는 자와 고백하는 자

27절에서 많은 번역본들은 “의심하다”란 단어를 포함시키고 있지만, 그래서 의심하는 도마라는 별명을 도마에게 붙이지만, 이 절에는 “의심”이란 헬라어 단어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pistos) 것과 믿음이 없는(apistos) 것이 대조되고 있지요.

의심하다는 뜻의 단어들로는 diakrinomai, dialogismos, distazō, dipsychos, aporeō, aporia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심하다”라고 번역한 아피스토으(apistos)에서  접두사 “a”는 “∼아닌” 혹은 “∼없는”이란 뜻으로 apistos는 pistos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apistos는 신뢰 또는 믿음 또는 확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하나님에게 질문하는 것이 믿음의 한 측면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질문하고, 대답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어떤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는 대답이 올바를 것이라는 신뢰가 들어있습니다. 도마의 질문, 즉 확신을 얻으려는 그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한 측면이라고 칭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27절의 “되라”(ginou)는 동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2인칭, 단수, 현재이고, 명령형입니다. 이는 두 가지 기본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1)은 되다(to become)는 의미이다. (2)는 “∼하다”(to  be)이다.

이 문장에서, (2)의 의미를 사용하기 보다는(“믿지 않으려고 하지 말고, 믿으려고 하라”), 다음과 같이 (1)의 의미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이 되지 말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라
∙불확실한 사람이 되지 말고, 확실한 사람이 되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신뢰하는 사람이 되라

도마는 자기 인생의 사거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믿음의 길에서 얼마나 많이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될까요? 우리는 계속 예수님을 신뢰할까요? 신뢰를 잃어버릴 때, 어디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요?

「Will Our Children Have Faith』이란 책에서 제시한 믿음의 단순한 단계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John Westerhoff III)

(1)경험된 신앙(유아기 및 초기 유년기)- 행동을 모방하는 단계, 예를 들면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주의 기도를 하는 어린아이 단계.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고, 이것이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이다.”

(2)입문하는 신앙(유년기 및 초기 청년기). 한 단체에 속하는 것. 하지만 여전히 그 단체가  하는 것을 모방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모임/교회이다.”

(3) 탐색하는/분석하는 신앙(후기청년기) - “내가 믿는 것이 이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도마가 이 단계의 한 사례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않는다. 스스로 어떤 확실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 신앙의 단계는 초기 단계의 마음에, 머리를 추가하는 것이다.

(4) 자기의 신앙을 갖는 단계(초기 성년기)-이 단계는 탐색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이 이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이것이 내가 믿는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도마의 장면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개인적 고백으로 끝난다. 도마처럼 탐색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은 다른 제자들의 입에서는 들을 수 없는 고백이다. 하지만 이것은 증언하고, 그 증언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강하고 인격적인 신앙이다. 다른 제자들도 분명 이 단계의 신앙에 도달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의심이 우리의 옛 신앙을 먹어치워서 죽여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만 새롭고 더 깊은 신앙이 태어날 수 있다.”

우리가 도마를 “의심하는 도마”라고 부르면서, 도마처럼 행동하지 않으려하기보다는, 그날 그 방에서 "그의 고백"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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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15장 내 구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