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34번 부활절(2)

(인도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회중)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인도자)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회중)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인도자)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회중)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인도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회중)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9-20)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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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말씀 _ 요한복음 20장 19~3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날, 곧 주간의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문들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 날은 안식 후 첫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 즉 오늘 우리가 주일이라고 부르는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부활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바로 마리아들과 함께한 다른여자들을 통해 그의 소식을 전해 들었지요. 요한복음 20장 18절 말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주님을 뵈었습니다.”하고 말했고 또 주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제자들은 문을 잠가 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모여있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20절에서 22절 말씀에 ‘제자들’ ‘그들’이라는 표현은 제자들은 누군가의 집에 함께 모여있었음을 알 수 있게해 줍니다.

아마도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모여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제자들은 모두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여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허탄한 이야기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자들은 다른면에서 동요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분명하게 깨닫고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부활은 알수 없지만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직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면 산헤드린 공의회와 제사장들은 ‘그들’을 의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갑자기 큰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제자들은 모였습니다. 그리고 문을 굳게 잠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굳게 닫힌 문과 상관없이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으라”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과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믿게하기 위함이다.

요한복음의 목적은 청중들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하거나, 계속해서 “믿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 “믿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믿는 것을 통해, 청중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20:31).

“믿다”는 헬라어 어근은 pist입니다. 사전적인 의미에는 “신뢰”의 개념이 들어있습니다. 이 헬라어 동사의 뉘앙스에는 “무언가(또는 누군가)”를 신뢰하고, 무언가(또는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에서부터, 어떤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포함됩니다. 즉, 신뢰는 관계성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 신뢰[ 信賴 , Vertrauen , Zutrauen ] - 헤겔

내가 어떤 타자를 신뢰한다는 것은 "나의 대자존재를 그가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그에게 목적과 본질이라는 식으로 내가 그 안에서 인식한다"[『정신현상학』 3. 406]는 것이다. 즉 그가 나의 존재를 인정해준다는 것을 나 자신의 확신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뢰의 가장 소박한 존재방식이 '신앙'이다. 신앙한다는 의식은 신앙 대상 속에서 자기가 긍정되고 있다고 느끼고 그것과 일체가 된다.

pist에 내재된 신뢰의 뉘앙스를 사용해서 요한복음 20:27-31을 다시 읽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마를 향한 예수의 말씀: “신뢰하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신뢰하는 자라 되라”와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신뢰하느냐? 보지 못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복음의 목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신뢰하게 함이고, 신뢰를 통해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

도마-질문하는 자와 고백하는 자

27절에서 많은 번역본들은 “의심하다”란 단어를 포함시키고 있지만, “의심”이란 헬라어 단어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pistos) 것과 "믿음이 없는"(apistos) 것이 대조되고 있을 뿐입니다.

성서에서는, 하나님에게 질문하는 것이 믿음의 한 측면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질문하고, 대답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어떤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에는 대답이 올바를 것이라는 신뢰가 들어있습니다. 도마의 질문, 즉 확신을 얻으려는 그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pistos/apistos의 의미 외에 우리는 또한 27절의 “되라”(ginou)는 동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되다(to become) (2)“∼하다”(to  be)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이 되지 말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라

∙불확실한 사람이 되지 말고, 확실한 사람이 되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신뢰하는 사람이 되라,

위의 본문 말씀을 존 웨스터호프(John Westerhoff)는  「Will Our Children Have Faith?』이란 책에서 믿음의 단계들의 사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 경험된 신앙(유아기 및 초기 유년기)- 행동을 모방하는 단계, 예를 들면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주의 기도를 하는 어린아이 단계.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고, 이것이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이다.”

(2) 입문하는 신앙(유년기 및 초기 청년기). 한 단체에 속하는 것. 하지만 여전히 그 단체가  하는 것을 모방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모임/교회이다.”

(3) 탐색하는/분석하는 신앙(후기 청년기) - “내가 믿는 것이 이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도마가 이 단계의 한 사례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않는다. 스스로 어떤 확실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 신앙의 단계는 초기 단계의 마음에, 머리를 추가하는 것이다.

도마는 그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제자들과 함께 머문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하는 단계는 27절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 즉, 질문자가 불신의 단계에 있을 것인가, 아니면 신앙의 다음 단계로 옮겨갈 것인가?

(4) 자기의 신앙을 갖는 단계(초기 성년기)-이 단계는 탐색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이 이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이것이 내가 믿는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도마의 장면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개인적 고백으로 끝난다. 도마처럼 탐색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은 다른 제자들의 입에서는 들을 수 없는 고백이다. 하지만 이것은 증언하고, 그 증언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강하고 인격적인 신앙이다. 다른 제자들도 분명 이 단계의 신앙에 도달했다.

우리가 의심하는 도마라는 아주 단순한 프레임으로 도마를 이해하지 않아야하는 또다른 이유를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의심이 우리의 옛 신앙을 먹어치워서 죽여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만 새롭고 더 깊은 신앙이 태어날 수 있다.”

더 깊은 신앙으로의 초대가 바로 부활절입니다.

이 부활절기가 우리를 더 깊은 신앙으로 이끌어주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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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