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8장 거룩거룩거룩 전능하신 주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60번 시편 139편

(인도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회중)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인도자)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회중)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1-4)
(인도자)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회중)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고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인도자)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회중)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7-10)
(인도자)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회중)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23-24)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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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말씀 _ 요한복음 20장 19~3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우리는 지난 부활주일을 시작으로 부활절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활절기는 성령강림주일까지 50일간 이어집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이 땅에서 40일을 제자들과 함께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것이 우리가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부활’이기도 합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보았던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신 예수와 함께 한 40일을 통해 ‘부활’에 소망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40일간 제자들과 함께한 예수는 40일째 되던 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승천’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건은 누가 복음서 24:44-53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 후 50일째는 즉 승천일 10일 후에는 성령 강림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올해 성령강림주일은 5월 19일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부활하신 예수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나타나심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동산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두 번째는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세 번째는 도마에게 나타나셨고 세 번의 나타나심은 모두 예루살렘에서 일어납니다.

예수의 네 번째와 마지막 나타나심은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는 21장에 등장합니다. 이 사건은  갈릴리에 있는 “디베랴 바다”에서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부활’에 관한 이야기라면 여러분은 ‘부활’을 믿으시겠습니까?

십자가에 죽었던 그 예수가, 무덤에 누였던 예수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마리아가 예수를 보았고 이제 제자들에게 나타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예수의 제자 ‘도마’가 들었습니다.

25절 말씀에서 제자들은 도마에게 “우리가 주님을 보았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도마가 대답합니다. “내가 그분의 손에 못자국을 눈으로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그분의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을 것이오”

이후 27절에서 많은 번역본들이 “의심하다”란 단어를 사용하여 ‘의심하는 도마’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지만 27절에는 “의심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pistos 와 apistos 사이의 대조가 증장하는데, 요한복음에서 두 단어가 모두 사용된 유일한 용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라”

apistos에서처럼 접두사 “a”는 “∼아닌” 혹은 “∼없는”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apistos는 “pistos가 없는”이란 뜻이 됩니다.

Lowe 와 Nid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는 형용사 pistos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정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신뢰하는 것에 속하는 것 -- 신뢰하는 사람, 신뢰하는

∙ 신뢰받는 것에 속하는 것 -- 신실한, 신뢰할만한, 의지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 확실한 것에 속하는 것, 완전하게 신뢰받는다는 의미를 지님 -- 확실한

apistos는 “신뢰 또는 믿음 또는 확실성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의심”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도마는 그의 인생의 교차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었던 그는 지금 다시 그 믿음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도 얼마나 많이 믿음의 갈림길을 만나가 될까요? 우리를 계속 예수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이에 관하여 John Westerhoff III가 『Will Our Children Have Faith』에서 말하는  신앙의 단계들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경험된 신앙(유아기 및 초기 유년기): 행동을 모방하는 단계, 예를 들면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어린아이. 즉,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고, 이것이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이다.”
(2)친화적인 신앙(유년기 및 초기 청소년기): 한 단체에 소속하지만, 여전히 그 단체가 하는 것을 모방하는 것에 집중한다. 즉, “이것이 우리가 믿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단체/교회이다.”
(3) 탐색하는 신앙(후기청소년기): “이것이 내가 믿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도마가 이 단계의 한 사례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확신을 필요로 한다. 이 믿음의 단계에서 이전 단계의 “마음”에 “머리”를 추가한다.
유감스럽게도 교회의 많은 성인들은 탐색하는 신앙을 장려하는 환경의 유익을 누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친화적인 신앙을 확대하여 탐색하는 신앙으로 확장하려는 청소년들을 보면 종종 놀라거나 불안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상태 동안에 타의로 교회를 떠나고, 몇몇은 결코 돌아오지 않고, 몇몇은 평생 동안 탐색하는 신앙에 머무른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탐색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경험된 신앙과 의존적인 신앙의 모든 욕구들을 포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들을 만족시키는 것을 필요로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의 지적인 갈등과 실험과  헌신을 위한 첫 번째 노력을 하는 동안 신앙 공동체 안에 남아 있도록 권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p. 97]
(4) 자신의 신앙을 갖는 단계(초기 성년기): 탐색하는 단계를 거쳐야 이 단계에 도달한다.  “내가 믿는 것이 바로 이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희망 가운데서 “이것이 내가 믿는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기독교의 대답을 찾는다. 도마의 장면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자신의 고백으로 끝난다. 우리는 이 고백을 도마처럼 탐색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은 다른 제자들의 입에서는 듣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강하고 자신의 믿음으로, 고백의 대상을 증언하고, 그를 위해 기꺼이 죽고자 한다. 다른 제자들도 이 단계에 도달한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의심”하는 도마가 아니라 “질문”하는 도마입니다.

얼마 전 중부연회에서 교회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몇 분 목사님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공통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모두 1:1 제자훈련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1:1 제자훈련을 잘 몰랐던 저는 그것이 목사와 성도 사이의 질의 응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그룹’모임의 중요성, 결국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고백’하는 제자들을 육성하는 것이었습니다.

pistos/apistos의 가능한 의미 외에 우리는 27절의 “되라”라는 동사에 주목해 보면 다음과 같이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이 되지 말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라.

∙ 불확실한 사람이 되지 말고, 확실한 사람이 되라.

∙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신뢰하는 사람이 되라.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도마는 그의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제자들 곁에 계속 머문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았습니다. 도마는 마침내 자신의 신앙을 갖는 단계에 도달하였습니다. 이는 탐색하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내가 믿는 것이 바로 이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희망가운데서 “이것이 내가 믿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의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Paul Tillich입니다.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과 더불어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개신교 신학자 중 한 분입니다.  독일계 미국 실존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였으며, 요하네스 틸리히와 마틸데 틸리히의 아들로 1886년에 독일 제국의 브란덴부르크에서 태어나 나치 정권에 의해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미국에 망명하여 1965년에 일리노이의 시카고에서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셨습니다. 틸리히는 하느님은 모든 존재의 근거이자 모든 존재 안에서 현존하기 때문에,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궁극적 실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그의 신학을 통해 만물은 존재 자체가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불완전하며, 고로 하나님을 통하여 본래적 실존을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의심이 우리의 옛 신앙을 먹어치워 죽여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만 새롭고 더 깊은 신앙이 태어날 수 있다.”

50일간의 부활절기는 성숙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부활절기 동안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까요? 이 부활절기가 우리들의 고백으로 채워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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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