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찬송가 6장 목소리 높여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33번 부활절
(인도자)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회중)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4)
(인도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회중)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 15:57-58상)
(인도자)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회중)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인도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회중)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인도자)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6-39)
(회중)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인도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회중)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5-27)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67장 즐겁도다 이 날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20장 19절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모여 있던 그 곳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분이 서 있는 곳, 그리고 제자들이 서 있는 그 곳을 브루그만은 폭력적이고 쉼이 없는 제국의 한복판에 서 계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시기 전,
제자들은 두려웠습니다.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었고, 그들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도무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에워싸는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께서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들과 함께 걷고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시던 예수님께서 그들의 곁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문을 닫고 모여 있는 제자들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에 조금의 위로와 위안 그리고 안도가 함께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들려오는 예수님의 목소리,
예수님께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제자들의 얼굴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놀라 얼떨떨한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쉽게 말을 할수 없는, 잠시 멈춤의 순간, 모든 것들이 멈춘 듯하나, 동시에 믿을 수 없음에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의 몸의 상처들이 제자들의 눈에 띄였습니다.
제자들은 그의 몸의 상처들을 보고 예수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이 분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시구나.’ 이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제자들의 얼굴은 다시 달라집니다. 이 상처들은 그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상처들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요한복음은 제자들이 기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요20:20)
제자들의 기쁨이 오늘 우리 안에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때 다시 예수님께서 두 번째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오늘 이 말씀을 브루그만은 “모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죽음 그리고 오늘의 평강이 어찌 가능한 걸까요?
죽음과 부활 생명의 모순이 “평강”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화해와 일치를 이루게 되는 신비가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요 20:2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셨습니다.
브루그만은 ‘숨’이 성경에서 ‘영’과 같은 단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생기를 잃은 제자들에게 인위적으로 호흡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놀라운 생명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표현은 창세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살아있는 생물이 되었다.”(창2:7)
‘숨’을 불어넣으시자 살아있는 생물이 됩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숨’으로 우리에게 다시 생명의 은혜가 넘쳐납니다. 부활의 아침은 이 ‘숨’이 다시 우리에게 넘실대는 새 창조의 아침이 됩니다.
그래서 부활의 아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아침이며 동시에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아침입니다. 다시 우리에게 생명의 선물이 부어졌습니다.
우리의 두려움, 불안, 막막함, 좌절, 절망, 분노와 폭력 위에 생명이 부어집니다. 다시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이 부어집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이것을 믿느냐?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부활의 아침을 2000년 전 그 날, 십자가 사건의 기록으로, 역사적 사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을 때에 부활의 아침은 생명의 능력으로 넘쳐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다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를 주노라.”(요 20:23)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요.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용서의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죄와 죄사함의 사건입니다.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보혈의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우리에게 다시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브루그만은 이 말씀으로 우리를 다음과 같이 초대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치유하고 용서하는 사역에 초대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치유하고 혁신하는 화해의 사역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것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어려운 과제입니다. 우리의 현실, 제국 안에서는 공짜 점심도 없고, 도와주는 손도 없으며, 두려움과 폭력과 실패의 악순환을 깨뜨리는 노력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여러분을 설득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과 내가 오늘 이 현실에 모순되는 부활절 생명운동에 참여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십시오. 정말로 생명이 죽음보다 더 강한지 함께 지켜봅시다.
비록 여러분들이 결코 둥참하지 않으려 하거나 신뢰하려 하지 않을지라도, 그렇지만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 번 말씀하셨고 우리에게 용서의 사역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브루그만의 초대는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부활의 아침이 밝아오기 전 마리아는 아직 어두울 때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발견한 것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빈 무덤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을 상상해 봅니다. 요한복음은 빈 무덤을 바라보는 그녀가 울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야, 왜 울고 있느냐?”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가져갔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선생님, 당신께서 그 분을 옮겨 놓았다면 어디에다 두었는지 내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 분을 모셔가겠습니다.”(요20:13-15)
마리아는 부활의 아침이 밝기 전, 부활의 소식을 듣기 전,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아직 무덤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간 마리아의 믿음이 제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리아는 그녀의 앞에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모두 이 아침에 주님을 만남으로 브루그만의 부활절 생명운동에 참여하기를 기도하는 오늘이 되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그러한 우리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
찬양 _ 찬송가 165장 주님께 영광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