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45번 시편 108편

(인도자)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회중)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인도자)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회중)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인도자)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회중)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인도자)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회중)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인도자)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회중)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다같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1-6)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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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21장 20~25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말씀을 전합니다.

사도 요한은 위대한 기록을 마무리하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요한복음의 기록 시기는 85~90년경입니다. 4복음서 중 가장 늦게 기록된 책입니다. 사도 요한(John the Apostle)이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50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에야 그는 요한복음의 기록을 시작하였습니다.

50여년의 세월동안 요한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나 많은 주의 제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헤롯왕에게 죽임을 당해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의 순교를 시작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순교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50년이면 긴 세월이었겠지요?

그리고 이제, 요한만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다른 주의 제자들이 그의 곁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였던 그의 형제들과 제자들이 떠나고 요한은 이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마가와 마태, 누가의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또 다른 예수님의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되었고 언제나 그렇듯 다시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예수님의 이야기, 그 일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두지 못할 것이다.
이 일들에 관해 증언하고 또 이 일들을 기록한 이 사람이 바로 그 제자, 나, 사도 요한이다. (요21:24~25)

이렇게 요한복음 21장은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20~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는 장면입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서 베드로가 묻는 ‘이 사람’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 요한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베드로가 마지막 만찬 때에도 “주님, 주님을 팔아 넘길 자가 누구입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어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궁금해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사도 요한은 마지막 부탁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요한복음의 말씀을 읽으며, 또 들으며 “누가 어떻게 될까?” “도대체 누가 말씀을 믿게 될까?” “누가 믿지 못할까?” 생각하지 말고, 그런 것은 상관하지 말고, 이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은 “너는 예수님을 따르라”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성경 말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따라오라.”

그런데 요한은 이미 20장에서 요한복음의 기록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표적들도 제자들 앞에서 많이 행하셨다. 그러나 이것들이 기록된 것은 너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분을 믿음으로써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요20:31~32)

그러니까 요한복음 20장에서 기록 목적을 이야기하고 21장에서 다시 한번 끝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20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기록 목적은 21장의 이야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요20:31)

어떻게 하면 생명을 얻을 수 있나요?

“믿음으로써”입니다.

믿음으로써 생명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 21장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호수로 갔습니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베드로가 말합니다. “우리도 함께 가겠소.”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는 말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제 일을 하러 가야겠소. 그래야 우리도 살아갈 수 있지 않겠소.” “그래요. 우리도 일을 하러 가야죠.” (요21:2~3)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 두 번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날 저녁,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들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다시 8일 후 제자들에게 특별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호숫가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두 번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시 갈릴리 호수로 물고기를 잡으러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마는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니? 믿을 수 없는 그 일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도 도마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며 상상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며 이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보이는 세계를 넘어, 그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믿음으로써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시 제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물을 버릴 수 있을까요?

물고기를 잡으러 그들은 다시 갈릴리 호수로 갔습니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물고기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덧 아침이 밝아 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느냐?”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그러면 잡을 것이다.”

그 말씀대로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들이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다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처음, 그들이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 그 때와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마 4:19~20)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는 그물을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물을 버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물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 또한 알고 계십니다.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21장 12절 말씀입니다. “와서, 아침을 먹으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또 9절 말씀을 보면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있었고 빵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기에 그물을 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으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20:21)

이것이 믿음으로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처럼 세상에 보내셨으니 그물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태초에 우리를 창조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자 사람이 살아있는 생물이 되었다.” (창2:7)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으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라”(요20:21~22)

생명의 숨, 예수님의 숨, “성령”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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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