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29번 종려주일

(인도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회중)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인도자)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회중)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인도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회중)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인도자)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회중)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슥 9:9-10)
(인도자)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회중)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다같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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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89장 샤론의 꽃 예수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2장 19~2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오늘의 말씀의 주제는 성전입니다.

브루그만은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하여 3가지 주제로 우리에게 깊이 묵상해 보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전과 예수님입니다.

두 번째는 파괴된 성전과 십자가 사건입니다.

세 번째는 재건된 성전과 부활입니다.

3가지의 주제 중에 떠오르는 말씀이 있으신가요? 오늘의 말씀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성전(聖殿, temple)의 사전적 의미는 신성한 장소, 거룩한 장소라는 의미로 신전(Sanctuary)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도 같은 의미에서 사용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의미하는 성전은 다른 의미를 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성전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다윗 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하 7장 6~7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다윗은 이스라엘을 강한 나라, 왕국으로 만든 이스라엘의 제2대 왕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율법과 제사장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허락한 땅을 차지하고 그 땅의 소산물을 가지고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국가들은 더욱 강력한 나라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위기감을 느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자신들에게도 ‘왕’을 달라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이스라엘의 뜻은 달랐으나 결국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집니다. 그렇게 사울은 제1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점차 왕의 직무가 무엇인지?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맙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부르심 이후 다윗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길 위에 서게 됩니다. 그런 그의 삶을 통해 그는 위대한 왕으로,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영원한 다윗의 왕국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왕, 다윗은 그에 걸맞는 궁전을 소유하게 됩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백향목 궁전에 사는 다윗은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구나.”

그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사무엘하 7장 6~7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부터 오늘까지 집에서 살지 아니하였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거늘 다윗아, 내가 너에게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느냐?”

여기서 등장하는 집이 바로 오늘 말씀의 주제, 성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 부릅니다. 또 성전에서 더 나아가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성막과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막, 성전, 교회를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 이전에 성전은 성막이었습니다. 다윗 왕 때부터 성막은 성전이 됩니다.

출애굽기 25장 2절과 8-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해서 ‘내게 예물을 거져오라’고 해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바치려는 사람이 내게 바치는 예물이라면 무엇이든지 받으라.”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게 하라. 그러면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것이다. 내가 네게 보여주는 모양과 똑같이 성막과 거기에서 쓸 모든 기물을 만들어라.”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이 머물 곳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들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세워지는 성막은 성소가 됩니다. 성막(Tabernacle)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동식 텐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성막 안에 성소가 만들어 지고,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장막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 하나님의 명령으로 세워진 성막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친히 다니시는 거룩한 장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이스라엘은 왕국이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은 성막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거룩하게 세워진 성막이었고, 성막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신 법궤가 놓여있었지만 다윗의 궁전에 비해 성막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적어도 다윗 왕에게는 말입니다. 그래서 고민에 빠진 것입니다. 그의 궁전처럼 성막보다는 크고 웅장하며 아름다운 성전을 하나님의 집으로 건축하고 싶은 다윗입니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다윗아, 내가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다고 너에게 한번도 이야기 한 적이 없단다.” “나는 애굽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너희의 장막과 성막에 거닐고 있었단다.”

하나님은 성전을 원하시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을 통해 성전 건축을 허락하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성막은 성전이 된 것입니다.

다시 성막과 성전을 구분해 보면 성막은 하나님이 다니시는 이동식 장소입니다. 그래서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막은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성전은 다윗이 하나님께 지어드리겠다고 한 “하나님을 위한 집”입니다. 당연히 성전은 움직일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또는 “다니시는” 곳이고 성전은 하나님을 “모시는” 곳이 됩니다.

하나님의 집,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은 이스라엘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성전이 없는 이스라엘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전은 곧 이스라엘이자 이스라엘의 전부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황폐해지며 그 슬픔이 배가 됩니다.

파괴된 성전, 이스라엘은 다시 성전을 재건합니다. 기원전 520년 바벨론 포로기, 스룹바벨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됩니다. 그러나 다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은 또다시 기원전 20년 헤롯왕을 통해 재건을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등장하는 성전은 헤롯왕에 의해 또다시 재건되는 예루살렘 제3성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을 무너뜨리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입니다. 적어도 유대인, 이스라엘사람이면 결코 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성전을 브루그만은 잘못된 성전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2장 14~16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께서는 밧줄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 밖으로 내쫓으셨다. 또 돈 바꾸는 자들의 돈들을 쏟아 버리시고 그 상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전에서 돈을 버는 이들, 소란스럽고 거룩함을 상실한 성전의 모습에 예수님께서 무섭도록 말씀하십니다. 떠나라! 그리고 그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시며 쫓아내십니다.

이 소동 이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성전을 헐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브루그만은 이 성전을 잘못된 성전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브루그만은 동시에 참된 성전을 설명합니다.

성전은 우리들의 삶의 중심지이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룩하심을 대면하는 곳으로 우리들의 삶의 핵심 목적을 새롭게 하는 곳으로,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의 삶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지 어떻게 우리가 기억될 것인지 보다 명확하게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말하는 성전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면 하나님을 모시는 거룩한 장소가 성전인데 요한복음 2장에서 묘사된 성전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한 상징을 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의미는 온데간데가 없습니다. 성막의 의미에서 살펴보면 하나님이 거하시고 다니실 거룩한 성소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눈에 보이는 성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성전은 잘못된 성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참된 성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자기 몸을 가르킨 것이었다고 요한은 21절에서 설명을 붙입니다.

여기서 앞서 생각해 보았던 세가지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첫 번째, 성전과 예수님입니다. 두 번째, 파괴된 성전과 십자가 사건입니다. 세 번째, 재건된 성전과 부활입니다.

잘못된 성전은 예수님을 통해 무너지고 진짜 성전이 세워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성전이 되십니다.

브루그만은 ‘예수’라 불리는 성전이 우리의 참된 거주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짜 성전,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으로 살아가며 우리 인생의 짐들을 내려놓고 꿈을 꾸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브루그만은 지금, 우리가, 대부분의 우리가 잘못된 성전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안정을 보장하지만 우리를 보다 불안하게 만드는 장소들, 기쁨을 주지만 우리에게서 진정한 위로를 빼앗아가는 일들,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의지로, 부분적으로는 습관적으로, 부분적으로는 우연히, 부분적으로는 유혹에 넘어가서 우리는 잘못된 장소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전을 예수님과 죽음, 순종과 수난과 새 생명과 기쁨으로 생각하지 않고 쇼핑몰, 극장, 시장, 면죄부 정도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있는 이 성전은 잘못된 성전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잘못된 성전에는 바쁘게 거래하는 사람들과 사고파는 사람들과 권력에 아첨하며 자신을 보여주고 가치를 인정받으며 확신을 얻고 싶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성전, 교회를 잘못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교회는 진짜 성전인가요? 잘못된 성전인가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장소는 진짜 성전인가요? 잘못된 성전인가요?

사순절에 우리가 할 일을 브루그만은 이러한 가짜 성전에서 나와 진짜 성전,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막과 성전은 마침내 예수님을 통해 하나가 되고 예수님을 통해 잘못된 성전은 무너지고 진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들의 교회는 이러할 때 진짜 교회가 됩니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가 진짜 성전, 진짜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이 한 주간의 고난주간 동안 우리들이 살아가는 장소가 진짜 성전이 되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을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진짜 성전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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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48장 영화로운 주 예수의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