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54번 시편 126 편
(인도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회중)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인도자)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회중)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인도자)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 보내소서
(회중) 눈물을 흘리며 시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다같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6)
송영 _ 찬송가 6장 목소리 높여서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3장 18~21절
요한복음은 4 복음서 중 가장 늦게 기록된 책입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기 전(A.D. 95년경)에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이 기록된 시기는 대략 A.D. 80~90년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1세기경 소아시아의 에베소 지역은 요한계시록의 7개 교회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시입니다.
에베소(에페소스)는 지금의 터키 이즈미르의 남서쪽 약 50㎞ 지점에 있던 고대도시로, 항을 두개나 끼고 있어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곳입니다. 이 곳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37~42년에 성도들이 박해를 받아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자 바울은 3회에 걸쳐 소아시아 지역으로 전도 여행을 하였지요. 에베소교회는 54~59년의 3차 전도 여행 때 세워졌습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에베소 교회 외에 소아시아 지역에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6개의 교회를 세웠는데, 에베소교회를 포함하여 일곱 교회를 아시아 7교회라고 합니다.

에베소에는 일찍부터 유대교 회당이 있었고,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 이곳 회당에 들러 유대인들과 논쟁으로 벌이고 오래 지체할 수 없어서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 두고 떠나게 됩니다.(행 18:20-21). 그후 제3차 선교여행 때 이곳에서 약 2년간 체류하며 처음엔 회당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그 다음은 헬라인들의 철학 강당인 두란노 서원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9:8-10).
한편 이곳은 아데미 우상 숭배의 본거지였는데, 바울의 복음 전파로 인해 아데미 숭배자들이 큰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행 19:23-41). 이 소동 끝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교회 사역을 맡기게 됩니다. 그 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에베소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딤전 1:3). 그 후 64년 바울이 순교하고 사도 요한(John)이 뒤를 이어 에베소 지역에서 선교를 하면서 복음 전파에 힘썼으나, 갈수록 초대교회의 모습을 잃어 버리면서 극단적으로 흘렀다는 기록이 《에베소서》《요한계시록》등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3-4)
사도의 요한의 마지막도 이 곳 에베소입니다.
에베소의 남서쪽 90km, 에게해의 스포라데스에 속하는 작은 섬, 밧모섬에 사도 요한은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밧모섬은 로마제국시대에 종교·정치범을 귀양 보냈던 유배지였습니다. 요한은 18개월 동안 밧모섬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요한계시록》을 남기게 됩니다.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밧모 섬에서 나와 에베소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사도 요한(John the Apostle)은 어부요 시몬 베드로의 동업자로서 갈릴리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변형되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함께했습니다. 그는 학문이 없었으나 판단이 빨랐고, 마음이 좋았으나 야심이 있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거절한 사마리아에 불을 내려 멸망시킬 것을 예수께 요청할 정도로 성격이 불 같았습니다. 그 일로 ‘보아너게’(우레의 아들)라는 별명을 얻었지요(막 3:17).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을 준비하는 베드로를 도왔고,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에 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심문당하는 장소까지 뒤쫓았고, 예수님이 못 박히실 때 십자가 아래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한 이가 바로 사도 요한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을 직접 보았고, 갈릴리 바다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났으며, 예수님의 승천을 다른 제자들과 함께 목격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시작된 초대교회에서 그는 베드로와 함께 활동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 소아시아 일대에는 헬라 철학과 동양의 이교 사상, 애굽과 인도, 페르시아의 이원론적 우주론에 유대교까지 가미된 그야말로 혼합주의적인 종교였다. 심지어는 이 사상에 기독교적 색채까지 가미되어 새로운 종교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 하여 영과 육신을 분리하는 이원론을 주장하였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신으로서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성육신 자체는 부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교회들은 많은 혼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동시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미혹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영생을 얻게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은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유일한 아들,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까지 세상을,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영생을 얻게하고 싶어하십니다. 우리가 멸망에 이르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조건이 딱 하나가 붙습니다. 믿는 자마다입니다. 모든 이들이 아닙니다. 믿는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해집니다. 즉, 사랑은 한쪽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은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입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25: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아가4:11)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 2:10)
함께 가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단 하나의 조건이 붙습니다.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됩니다. 믿는 자들에게 진리는 비로소 영생의 신비를 우리에게 드러내줍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말씀이네... 그런데 말씀은 좋은 것, 그 이상의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1:1)
사도 요한은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있었으며 그 말씀이 바로 ‘그’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태초의 세상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하나님과 함께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은 16절의 믿는 자들과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8)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19)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3:20)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3:21)
요한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어둠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요한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가 “빛”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천지의 창조는 바로 이 “빛”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빛” 이후에 모든 생명이 살아납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다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시려고 이 “빛”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빛”을 미워하는 자들이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빛”을 미워하는 자들은 자기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빛”이 있음으로 그들의 “어둠”이 드러날까 하여 “빛”을 미워하고 이 “빛”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영생”은 “빛”입니다. “빛”이 아닌 “영생”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생명”은 “빛” 가운데 생명의 신비를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이미 심판을 받은 이유가, 그들이 이미 “어둠” 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권력과 힘, 명예와 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이 “어둠”에 살고 있는 한,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요한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빛으로 오는 자들이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며,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 “빛”으로 오는 이유를 우리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월의 마지막 주일, 생명의 빛으로 찬란한 4월입니다.
“빛”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믿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영생의 소망 안에서 “빛” 가운데 이 세상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더욱 소망합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 성도요, 교회가 되기를 다시 한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