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37번 삼위일체주일

(인도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회중)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인도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회중)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인도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회중)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인도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회중)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인도자)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회중)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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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말씀 _ 요한복음 3장 1~15절

사람의 기원(origin)은 요한복음의 주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19장 9절에서 빌라도가 예수에게 “너는 어디로부터냐?”라고 질문합니다. 예수의 “기원”은 요한복음서 줄 곧 등장하는 주제이지요. 1장에서 우리, 즉 독자들은 말씀이신 예수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습니다. 이것이 요한의 신앙고백입니다.

반면,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ek)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7:27-28, 8:14, 9:29-30에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가 두 번째 등장할 때(7:50), 니고데모에게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너도 갈릴리에서(ek)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7:52)

예수는 어디 출신인가? 사람들의 관심을 예수가 도대체 어디서 왔냐?는 것입니다.

예수는 갈릴리의 나사렛 출신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요한에게 더 깊은 믿음의 대답은 “하나님으로부터” 또는 “하늘로부터(ek,3:13) 내려오신 분” 또는 “위로부터 오신”입니다.

Bruce MalinaRichard Rohrbaugh는 요한복음에 대한 사회과학적 주석에서 출생의 중요성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제가 출생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명예 등급을 결정할 때에 단 하나의 매우 중요한 요소는 출생 때의 신분이었다. 갖고 태어나는 명예, 즉 출생 할 때의 그 사람의 신분에서 비롯된 명예는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 명예는 그 사람에게 평생 동안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 사건이 아무리 생각하지 못할 일이더라도, (anothen의 한 가지 의미가 될 수 있는) 다시 태어남이나 두 번째로 태어남은 그 사람이 갖고 태어난 명예를 매우 근본적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새로 갖게 된 명예신분은 새로운 출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특히 첫 번째 출생으로 인한 명예수준과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면, 두 번째 출생은 엄청나게 삶을 변화시키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p. 82]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 즉 하나님의 영역인 하늘에서 태어나는 것은 그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높은 등급의 명예신분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떤 명예신분을 갖고 있었다할지라도 “위로부터 ” 태어남은 전혀 새로운 수준에서 그 사람을 재창조하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또한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녀들이 그 아버지의 명예신분을 갖게 되기 때문에, 장자를 제외하고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의 신분의 차이가 분명하게 사라진다. [p. 82]

여러분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첫째는 고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충남? 경남? 서울? 그리고 엄마 뱃속? Bruce MalinaRichard Rohrbaugh에 따르면 저와 여러분에게도 출신 성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디 태생? 출생?에 따라 신분이 정해집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명예 등급을 결정해 버립니다. 갖고 태어나는 명예, 즉 출생 할 때의 그 사람의 신분에서 비롯된 명예는 이렇게 단순히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명예는 한 사람을 평생 동안 따라다닙니다. 다행히도 사회가 정의롭다면 이 한계는 곧 극복되고 그 출신성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와 사회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3절 말씀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일지는 몰라도 이 말씀은 많은 이들에게 ‘구원’이 될 것입니다.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질문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하지 못할 일이더라도, “거듭나야”라고 말씀하신 ‘다시 태어남’이나 ‘두 번째로 태어남’은 그 사람이 갖고 태어난 명예를 매우 근본적으로 바꿀 것입니다.

새로 갖게 된 명예와 신분은 새로운 출생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말씀하신 두 번째 출생은 엄청난 삶의 변화이자, 일대의 사건입니다. 이 거듭남을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씀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거기서 태어나서 노력해 보았자,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전주 국제영화제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 한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1지망입니다. 지연이는 삼남매의 첫째입니다. 고3이고요. 그래서 지연이는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됩니다. 1지망, 2지망, 3지망... 대학의 이름이 모두 지방대학입니다. 선생님은 지방대학이 나쁜건 아니지만 여기 가까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지연이는 1지망 대학에 꼭 가고 싶다고 대답을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선생님은 부모님과 상의는 했냐?고 물으시고 그렇게 지연이와 삼남매의 이야기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동반한 끔찍한 폭력으로 삼남매를 키우는 아버지, 지연이는 이제 1지망을 통해 떠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둘째와 셋째는? 지연이가 대학에 간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는 그 결말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지연이는 어린 둘째를 때리는 아버지를 말려보지만 아버지가 휘젓는 팔 한쪽에 나뒹굴 뿐입니다. 힘써보지만 매달려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지연이에게 ‘거듭남’은 유일한 ‘구원’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 즉 하나님의 영역인 하늘에서 태어나는 것은 그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매우 높은 등급의 명예 신분을 얻는 것이지요. 따라서 한 사람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떤 명예신분을 갖고 있었다 할지라도 “위로부터” 태어남은 전혀 새로운 수준에서 그 사람을 재창조하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제 달라져야합니다. 더 깊은 믿음의 대답으로 “위로부터”(anothen)와 “물과 성령으로부터(ek)”왔다는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고, 주장하시고, 그렇게 만드셨다”라고 “나는 거듭났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유일한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듭남으로 지금의 감리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보에 소개한 요한 웨슬리의 회심이 그것입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신도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경에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I felt my heart strangly warmed)."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으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음과,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 고백으로 웨슬리는 거듭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본문말씀 15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15절은 이 복음서에서 처음으로 “영생”이 사용된 곳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이 문구가 사용될 때마다, 늘 현재시제 동사(have)가 함께 사용됩니다. 다시말하면 영생은 믿는 자들이 지금 갖고 있는 어떤 것이고, 아마도 “끝이 없는 생명”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시작해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바로 무엇인가? O'Day는 신약 주해 성서(the New Interpreter's Bible)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네 번째 복음서에서 중요한 비유적 표현들 가운데 하나이며,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간 실존에 일어난 변화를 묘사한다(예를 들어 3:36;4:14;5:24;6:27;17:4). 영생을 얻는 것은 더 이상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규정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1:13). “영원한”은 인간실존의 단순한 끝없는 지속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나님의 끝없는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영생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제공받는 것이다.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새로움을 “영생”이라고 말할 때, 종말론적인 기대가 현재적인 것으로 바뀐다. 영생은 신자들의 미래 때까지 미정인 채로 남아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현재에서 시작되는 어떤 것이다. [p. 552]

영생이란 유한한 인간에게 일어난 전적인 변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 것은 더 이상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규정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진리 안에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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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08장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