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7번 사순절 (4)
(인도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회중)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인도자)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회중)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인도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시 33:12-16)
(회중)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인도자)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요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회중)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시 33:20-22)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
말씀 _ 요한복음 3장 14~2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알고 계신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이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구원”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1.구원의 주체 : 하나님
2.구원의 대상 : 세상, 모든 인류
3.구원의 동기 : 사랑
4.구원의 주체 : 독생자(예수)
5.구원의 방법 : 믿음,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6.구원의 목적(결과) : 멸망하지 않음, 영원한 생명
이 말씀을 하나하나 깊이 묵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어떠해야하는지 알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기복신앙’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기복신앙에 대한 사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정 대상에게 복을 비는 행동과 마음을 일컫는다. 기복신앙은 자신의 복을 비는 것으로, 자신의 불안전함을 해소하기 위해 믿는 초자연적인 존재나 힘에 대한 신앙과 그와 관련된 행동을 가리키는 종교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대체로 이러한 기복신앙은 삼신과 칠성신에게 아들 낳기를 비는 것처럼 신에게 직접 기복을 빌거나, 대학 입시 합격, 가정의 평안 등을 사찰의 기왓장에 적어 복을 비는 형태 등으로 나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복신앙 [祈福信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간단히 정리하면 ‘나’를 위한 ‘복’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를 ‘나’를 위한 ‘복’을 빌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가? 묻습니다.
왜? 기독교인이어야 할까요? 왜? 구원일까요?
요한복음 3장 16절은 14절에서 시작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렸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 올려져야 한다.”
예수의 이 말씀은 민수기 21장 9절의 사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원망에 앞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믿을 수 없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은 호르마를 점령하셨습니다.
(민 21:1)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민 21:2)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민 21: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호르마는 ‘봉헌’, ‘완전’이란 뜻으로 가사와 브엘세바 사이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세의 제지를 뿌리치고 가나안 진격을 시도하다 그 일대 아말렉과 가나안 원주민들의 반격으로 패배한 곳입니다. (민 14:45; 신 1:44)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께서 부르짖습니다.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어떻게 호르마를 점령했는가? 설명할 수 없는 그일을 오직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렇게 호르마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은 다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갑니다.
(민 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구원의 사전적 의미는 노예 상태나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건져내어 자유를 주는 행위. 또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 구원은 주로 어떠한 위험이나 악으로부터 ‘구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곧, 패전(출 15:2), 고통(시 34:6), 폭행(삼하 22:3), 조롱(시 57:3), 포로(시 106:47), 사망(시 6:4), 죄(겔 36:29)로부터의 구출인 것입니다.
“구원”의 히브리어는 “예수아”, 우리가 아는 여호수아입니다. “예수아”를 번역한 말이 ‘구원’이요. 헬라어로는 “소테리아 soterla”그리고 그것과 어원이 같은 (치료, 회복, 구속, 의약, 구출, 복지)을 번역한 말입니다.
또 하나의 헬라어 단어는 ‘소조 sozo’=“구원하다”입니다. “sozo”의 기본 뜻은 “위험에서 구출해서 이전의 안전하고 행복한 상태로 회복시키다”입니다.
기적을 경험했던 그들의 ‘기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길을 우회하여야 했고 그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었습니다. “우리에겐 물도, 먹을 것도 없다.” 이스라엘의 아우성이 지나친 것은 아닌 것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들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찮은 음식이 싫다.”
“하찮은 것”, 세상에서 하찮은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하찮다고 생각하고 살아가시나요?
이스라엘의 이 “원망”에 광야의 불뱀들이 요동을 쳤습니다. 수 많은 백성들이 이 광야의 불뱀에 물렸고 쓰러졌습니다.
이 상황을 바라보는 모세는 ‘기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와 협박에(하나님, 이렇게 당신의 모든 백성을 죽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놓으라, 이 놋뱀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살리라”
이 놋뱀이 현재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의 심볼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구원”입니다.
광야에서 그들의 원망은 꽤나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안한 침대에서 시작하여 더 좋은 집, 한 끼를 위한 소중한 빵 한조각에서 시작하여 더더더 건강하고 좋은 음식과 디저트, ‘욕구’는 더욱 많아지고 결과는 ‘불뱀’과 같은 욕구들이 요동치며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기복’일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구원’입니다. 노예 상태나 위험에서 구출되는 것, 또한 이것은 우리를 다가올 심판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심판으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민수기에서 놋뱀을 바라본 이들은 모두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예수께서 오늘 요한복음 3장에서 이 사건을 통해 앞으로 당신이 이루실 일을 선포하셨습니다. “인자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이렇게 예수를 바라보기만 한다면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사랑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새드엔딩의 확률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에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가 드러나지 않기 위하여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오늘 이 이야기의 엔딩은 저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세상이 알기롤 오늘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