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96번 어린이주일
(인도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회중)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인도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회중)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시127:3-5상)
(인도자)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회중)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인도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회중)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인도자)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회중)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18:3-5)
(인도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회중)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다같이)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99장 나의 사랑하는 책
말씀 _ 요한복음 15장 1~10절
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 본문의 말씀을 요한복음 15장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이 기억에 나십니까?
"나는 I am..." 이렇게 시작하는 본문의 말씀으로 이어지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는 목자다"라고 하셨는데, 새삼스럽게 저에게 큰 깨달음을 준 것은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하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입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5절이죠. 네 5절 말씀 함께 다시 읽겠습니다.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말씀의 주제가 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다. 그러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누구입니까? 우리, 우리죠. 우리가 가지입니다. 이제 포도나무와 가지라고 하는 이미지를 가지시면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신학적 상상력'입니다. 내가,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로 산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럼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게 되십니까? 하나의 단어, 세 글자죠. '공동체'. 맞습니다. 우리는 이 공동체라고 하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무엇이냐라고 얘기하면 공동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공동체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5장이 1절에서 17절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공동체의 이미지인데 이 공동체의 이미지는 연관성, 상호성 그리고 내재성이라고 하는 세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관성, 상호성, 내재성입니다.
어떻게 그럴까요? 일단 포도나무를 떠올려 보십시오. 포도나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먼저 포도송이가 이렇게 막 떠오르시는 분 있죠? 아닌가요? 포도송이 말고 포도나무 어떻게 생겼어요? 떠올려 보시면 네, 꼬불꼬불하고요. 근데 그 꼬불꼬불한 게 포도나무와 가지. 그 가지가 굉장히 많아요. 근데 줄기가 하나예요? 아니에요. 그렇죠?
뿌리에서부터 막 올라오는데 생각을 해보면 이 중간에 되게 굵은데 그 가지가 저도 잘 생각은 안 나지만 하나의 몸통, 그러니까 이렇게 통째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올라가면서 이렇게 꼬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으세요? 여러 가지가 꼬아져 있다가 그 꼬아져 있는 것이 쫙 위로 올라가서 가지가 확 뻗어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치 하나의 몸통처럼, 줄기가 보이는 거죠. 그렇죠. 포도나무의 그 가지들이 다 엉켜 있어서 하나같이 보여서 거의 완벽하게 완전하게 구별할 수는 없죠.
그래서 하나의 가지가 어디에서 끝나고 다른 가지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육안으로 또는 우리가 그냥 보기에는 판단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포도나무예요. 상상이 되십니까?
이것이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가 포도나무의 이미지를 갖는다면 공동체에는 독립된 개인들이 없고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를 완전하게 에워싸고 있는 가지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마치 무엇처럼 보이는 거예요? 하나처럼 보이는 거죠.
그런데 되게 신기한 게 포도 열매, 포도송이를 보셨잖아요. 그런데 그 포도송이는 어디에 열립니까? 가지. 그렇죠. 하나 하나의 가지에 다 열려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생각해 보시면 하나처럼 보이는 몸통에서 포도 열매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지 하나하나에 다 열매가 맺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포도나무가 매우 많은 포도송이, 포도 열매를 수확하게 됩니다. 완전하게 에워싸고 있다고 해서 하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우리를 서로 에워싸고 있어요. 그런데 가지 하나하나에 열매가 있는 거죠. 시은이의 열매가 있고 승현이의 열매가 있고 현준이의, 온유의 열매가 제각각 있는데 그 열매를 맺는 가지가 서로를 에워싸고 있어서 너무나 풍요로운, 한 가지에 매달린 열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풍성하고 풍요로운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공동체라고 하는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상상을 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이 말씀에 동의가 되십니까?
공동체가 그렇습니다. 사실 이 포도송이가 제가 지중해에 갔을 때 놀랐다고 하는 말씀을 한 열 번째는 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 포도송이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직접 들어보고 놀랐죠. 만약에 한 가지에서 포도송이가 그렇게 매달려 있다면 이 가지가 어떻게 될까요? 그 열매 때문에 찢어질 것입니다. 그만큼 무겁습니다.
그런데 포도송이에 달려 있는 이 포도송이가 매달려 있는 이 가지가 어떻게 해요? 서로 엉켜 있어서 한 가지에서 포도송이가 달려 있다면 찢어질 텐데, 서로가 에워싸고 있어서 한 가지인지 여러 가지인지 육안으로는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열매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은혜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에워싸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그러한 존재들이 하나로 마치 하나이듯이 보이는 것이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이 포도나무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포도 가지가 있죠. 그런데 가지를 보며 포도나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서로 하나 되어 포도나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뭐라고요? 포도나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얘기를 하죠. "어 믿음만 있으면 교회를 안 다녀도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도전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포도나무와 가지다."라고 하는 이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를 상상해 볼 때 포도나무 없이 거기서 잘려 나간 가지에서는 열매가 맺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이미지를 가질 때 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포도 가지가 공동체라고 하는 교회의 이미지를 가지셨다면, 이제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이 포도나무와 가지라고 하는 이 이미지를 가지고 나의 상황에, 나의 삶의 자리에 적용해 보아야합니다.
다시 5절에 있는 말씀을 읽겠습니다. 시작.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는 포도나무요"라고 하는 이 문장이 헬라어로는 이렇게 표현이 돼 있습니다. '헤 암펠로스 헤 알레디네'. 우리는 지금 "나는 포도나무요" 이렇게 얘기를 했잖아요. 그런데 헬라어 성경에는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는 표현으로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펠로스는 포도나무이고 알레디네는 참으로, 진정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냥 포도나무가 아니라 참 포도나무라 그래서 '헤 암펠로스 헤 알레디네'라고 하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왜 참 포도나무일까요? 이스라엘은 흔히 포도나무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포도나무에 무엇이 없을 때? 맞습니다. 열매가 없을 때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징계하시며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금 쓰시는 이 표현은 참 포도나무, 나는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열매가 있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로 얘기하실 때는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과정 이런 이야기도 하죠. 결과 이런 얘기를 하죠. 그런데 과정과 결과를 우리 신앙의 용어로 표현하자고 하면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열매를 맺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과정 중심도 아니고 이것은 결과 중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열매 맺는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래서 그 열매라고 하는 단어와 함께 쓰여 있는 표현이 뭐냐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입니다.
여러분, 열매의 다른 말이 무엇일까요? "할 수 있다."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렇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열매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는 삶은 무엇이다? 할 수 있는 삶. 이것을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부터 17절에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하나의 단어가 있습니다. 동사인데요. 무려 1절부터 17절까지 11번 등장합니다. 여러분 찾아보시겠습니까? 어떤 단어일까요? 어떤 단어일까요?
'거하다'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는 거하다라고 하는 단어는 '메노'입니다.<거하다> 한자로는 살 거(居), 살다라는 표현이죠. 그리고 머물다, 남아 있다, 살다, 거주하다, 지속하다, 참다, 계속하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헬라어 단어 메노입니다. 이 메노를 우리는 번역하여 '거하다'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단어가 열한 번이나 등장한 겁니다.
이 거하다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왜 갑자기 포도나무와 가지 안에서 거하다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문맥상으로 살펴보면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어떤 관계여야 되는 거예요? 거하다여야 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어떤 관계? 거하다. 그러면 단지 우리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포도나무에 가지가 거하다라고 써 있으면 이것은 사는 것만의 의미입니까? 아까 제가 써 있죠. 이 매노라고 하는 단어는 계속하다, 지속하다, 살다, 남아 있다, 참다라고 하는 단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뭐다? 거하다라고 하는 메노라고 하는 이 동사를 통해서 다 설명이 되는 거죠.
그것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입니다. 하나의 단어, 거하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를 믿으면" 그렇게 말씀하셨죠?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 쉬운 말로 하면 나를 통해서만 아버지에게로 간다. 그것이 구원이에요. 나의 힘으로는 능력으로는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구원받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구원받은 우리가 관계를 형성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면 이 거하다, 포도나무와 가지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관계가 이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구하는 것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약속을 믿고 우리 인생을 이러한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의 인생의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해야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생명이고 그러할 때 풍요가 약속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 그 문을 통과하고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하고, 살고, 유지하고, 지속하고, 참고, 남아 있는 메노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열매가 우리에게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말로 하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인 포도나무와 내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를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삶의 열매가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결과로서의 열매, 열매가 헬라어로는 '카르포스'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메노인데 그 거하다라는 것에 대한 결과 카르포스, 열매입니다. 거함의 증거, 우리의 삶의 열매를 통해서 예수님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이 사실은 명확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가 많이 맺히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 하나의 단어를 오늘 저와 여러분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헬라어로는 '카다이로'입니다. 카다이로. 무슨 뜻일까요? '제거하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포도나무에 포도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맞습니다. 가지치기입니다. 이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열매가 결코 맺힐 수가 없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읽어 보시겠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여기서 등장하는 '제거하고 깨끗하게 하신다'라고 하는 표현이 카다이로라고 하는 제거하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거하다'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말씀, 이 카다이로라고 하는 '제거하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열매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은 늘 변합니다. 우리가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지라도 우리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 안을 견고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이 늘 변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뿌리는 결코 변하지 않지만 매년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전지가 필요합니다. 카다이로가 필요하다는 거죠. 아마도 이 전지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들, 행동들을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너무나 오래되어서 습관적으로 그 습성을 하나님께서 제거하지 않는다면 좋은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전지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니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에 전지가 필요합니다. 카다이로. 제거해야만 하는 많은 습성과 습관과 태도와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에 있어서 제거되어야 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새로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떠오르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예리한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셔서 여러분을 깨끗하게 하고 여러분을 정결하게 하고 여러분을 죽이며 살게 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작년과 지금, 올해 그리고 내년이 전혀 같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카다이로에 놀라지 마시고 열매를 향한 하나님의 거하심과 제거하다의 이 신비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삶에도 가지 치기가 분명히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메노와 카다이로를 통해서 열매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카르포스, 열매죠? 그리고 헬라어로 메노, 거하다. 그리고 카다이로, 제거하다. 이 메노와 카다이로를 통해서 카르포스 열매를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찬양 _ 찬송가 564장 예수께서 오실 때에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