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41번 시편 97편
(인도자)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회중)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인도자)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는도다
(회중)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인도자)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랍같이 녹았도다
(회중)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
(인도자)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산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회중) 여호와여 시온이 주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였나이다
(인도자)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시니이다
(회중)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인도자)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회중)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1-12)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28장 오 나의 주님 친히 뵈오니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4장 20~24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지 못한지가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모이지 못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어느덧 너무 지난 일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릴 적 엄마는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학교에는 안 가도 교회에는 꼭 가야하는 거야!”
그래서 교회는 정말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놀라가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명절에도 당연하게 교회에 가는 것이 언제나 먼저였습니다.
2020년 처음으로 교회에 모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목사님들 사이에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중단할 수 있는 것인가?”
“예배는 중단할 수 없다.” 이것은 모든 이들의 일치된 목소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예배해야하는가?” 이에 대한 첨예한 대립과 논쟁이 시작되었고 이 논쟁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이 논쟁에 대한 해답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사마리아)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님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구한 여인을 상상해 봅니다.
말 그대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달라고 청한 여인에게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허기진 삶에서 생수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된 여인에게 이제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아무것도 더할 것이 없는 여인은 묻습니다.
“어디서 예배해야 합니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달라 청한 여인은 그때 알게 되었을까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마시려면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예배” [禮拜, worship]는 헬라어로는 종이 주인에게 문안할 때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조아리며 발에 입맞추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주님께 나아와 엎드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또 예배는 ‘경배’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에서 나온 진정한 엎드림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예배라는 말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처음 등장합니다.
역대상 28장 13절 말씀입니다.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과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모든 일과 여호와의 성전을 섬기는 데에 쓰는 모든 그릇의 양식을 설명하고
성전에서 섬기는 모든 일을 공동번역에서는 ‘예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통해 처음 등장한 ‘예배’는 구약성서에서는 ‘제사’[祭祀 , sacrifice]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4장 3절 말씀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에덴 동산을 떠난 아담과 하와, 그의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태초의 사람들로부터 ‘제사’가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을 떠난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의 자녀들이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제사’인 것입니다. 수고하여 얻은 소산물(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이 제사입니다.
여기서 ‘제사’의 중요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희생’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세기 12장 7절)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하나님을 만난 아브람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피흘린 제사 제물을 드렸습니다. ‘제물’이 없이는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에서 다시 모세의 율법으로 제사 때 사용되는 제물(예물)의 종류는 제한되었습니다. 제물은 동물과 식물 두 가지로 구분되고 동물로 드리는 제사는 속죄제와 속건제 그리고 번제와 화목제 등이고, 식물로 드리는 제사는 소제와 전제로 구분되었습니다.
‘희생’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제단은 성막으로 성막은 다시 성전으로 ‘희생’의 제사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성전이 무너지고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었던 이스라엘은 ‘회당’에서 율법을 낭독하고 찬양과 기도로 ‘제사’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이 ‘제사’가 ‘예배’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한의 기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약 AD90년을 전후로 기록된 요한복음는 ‘예배’라는 단어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제사’와 다른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장20~24절)
“아버지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도 예배는 중단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먼저 전하시는 말씀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이 산과 예루살렘은 ‘어디서 예배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곧 예배의 장소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됩니다. 율법에 따르면 ‘제사’의 모든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그 ‘제한’을 넘어섭니다. 장소의 제한을 넘어서는 것이 예배라면 우리의 처음 논쟁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꼭 ‘교회’에서만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있는 모든 곳, 가정과 직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명이든 두명이든, 그 이름으로 모인 모든 곳에서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이 따라옵니다. “참되게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되게 예배한다는 의미를 요한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희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제사’는 점차 의식화되고 형식화되어 갑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BC450년경, 에스라, 느헤미야선지자와 동시대 활동)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말라기 1장 6~7절)
공경과 두려움, 거룩함이 없는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은 더 이상 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희생’의 의미를 모르는 ‘제사’는 피를 흘릴 뿐입니다. 그러한 피 흘림을 하나님은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히브리서 10장을 통하여 ‘제사’에서 ‘예배’가 된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장 1절)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장 12~14절)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거룩한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단 한번의 제사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더 이상 ‘제사’가 필요치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고 이스라엘의 절기인 오순절이 되어 제자들도 마가의 집에 모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장 1~4절)
사도행전 2장 말씀을 통해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오순절, 마가의 집에 사도 요한도 함께하였습니다. 마가의 집에 함께 모인 제자들의 기도와 찬양과 말씀의 나눔이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고 그 분을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여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라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결단하고 그러한 삶의 나눔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예배하든지 ‘성령’이 함께할 때 참된예배가 됩니다. 우리 예배의 주인은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예배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참으로 예배할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이 우리를 참된 예배로 인도합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는 때가 이르렀습니다.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모두 함께 교회에 모여 예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있는 그 곳에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동안 우리의 예배는 어떠한 예배였나요?
바라기는 이제, 참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더욱 교회를 사랑하는 진정한 성도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장 44~47절)
찬양 _ 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