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6번 사순절 제3주

(인도자)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회중)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인도자)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회중)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인도자)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회중)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인도자)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회중)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인도자)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회중)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인도자)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회중)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다같이)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시 25:1-10)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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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말씀 _ 요한복음 4장 5~42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주 긴 말씀입니다. 이 긴 말씀의 주제는 근본적으론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제는 요한복음의 시작부터 거듭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가나의 혼인잔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육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오늘의 말씀도 이러한 요한복음의 주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Brown (John, Anchor Bible) 은 오늘 본문의 개요를 이렇게 말한다.

∙서론과 배경(4:4-6a)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4:6b-26)

∘생수에 관한 대화(4:6b-15)

∘참된 예배에 관한 대화 (4:16-26)

∙제자들과의 대화 (4:27-38)

∘두 장면 사이의 연결 (4:27-30)

∘예수께서 주는 양식에 관한 대화 (4:31-34)

∘추수에 대한 비유적인 속담(4:35-38)

∙결론: 동네 사람들의 회심 (4:39-42)

서론(4-6a)

“수가”(Sychar)라 하는 동네는 구약성서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Sychem(히브리어의 “세겜,Shechem)”이 정확한 철자라는 의견이 있지만, 그 마을의 근처 약 3.2 떨어진 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주장은 오늘날의 아스갈(Askar) 마을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피곤해지셔서 그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6절의 말씀입니다.) 그 때가 열 두시입니다. 그 때 그 우물에서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만남이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을까요?

생수에 관한 대화

여인을 만난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러자, 그녀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마실 것을 달라고 하십니까?”

이렇게 예수님과 그녀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는 예수님 요청은 사회 관습에 위배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모든 사마리아 사람들을 부정하게 여겼고,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한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사마리아인이 주는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또한 남자가 공공장소(우물)에서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27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여자와 말씀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thaumazo의 미완료시제는 갑작스런 충격이나 순간적인 놀람 이상으로, 계속되는 놀람이나 경이를 암시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또한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녀의 놀람도 잠시, 예수님께서 다시 그녀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날고 또 ‘내게 마실 것을 달라’고 너에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요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생수”는 세속적인 의미와 더 깊은 영적 의미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문자적인 차원에서, 생수는 저수지(물통)의 잔잔한 물과 대조되는 흐르는 물을 의미하지요.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 생수는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1. 예수께서 제공하는 계시. 구약성서에서 물은 생명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사용된다(잠언13:14, 이사야 55:)

2. 예수께서 주시는 성령. 요한복음 7:37-39은 마시는 생수와 신자들이 받게 될 성령사이를 연관시킨다.

3, 새로운 생명과 신분을 가져다주는 물과 성령의 세례(또는 침례, 또는 탄생). 고린도전서 10:1-5은 세례와 (신령한) 음료를 연관 짓는다.

생수에 대한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줄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러자 여인이 말합니다. “주님, 그 물을 내게 주셔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로 물을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해 주십시오”

생수와 증언

여인이 이 물을 달라고 요청하지만, 이야기는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는 급격한 전환을 맞이합니다. 전혀 다른 대답이 여인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여기서 화제를 바꾸신 것일까요? 그것은 우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창세기 29장에서 야곱은 한낮에 우물가에서 미래의 아내 라헬을 만났습니다. 한 세대 전에 아브라함의 종이 우물에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창세기 24장).

성서학자 Robert Altar는 이와 같이 반복되는 설정을 '성서적 유형 장면'이라고 설명하고, 우물가에서 만나는 비유를 ‘약혼 유형 장면’이라고 부릅니다. 왜 결혼을 언급하셨을까요? 많은 주석가들은 상징적으로 여자의 남편을 사마리아를 지배했던 다섯 정치 세력이나 초기 사마리아 일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다섯 민족을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열왕기하 17:24은 북 왕국의 멸망 후에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역사 이야기를 다시 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약혼 유형의 장면은 한 부부의 결혼이 아니라 사마리아인과 그들의 하나님과의 결혼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사마리아, 이제 예수님은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여자여, 나를 믿으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다른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오고 있다.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오고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그를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예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

예배를 뜻하는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11회 사용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배의 주요 쟁점이 어디에서 (예배하느냐)에 있지 않고, 누구를 (예배하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Father)”를 세 번 언급하는데(21,23절), 이 용어는 여인이 야곱에게 사용한 단어입니다.(12절).

지난주 본문은 우리에게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장의 형태를 바꾸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예배하기 위해서는 육의 존재에서 영의 존재로의 변화가 일어날 필요가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리새인 니고데모, 다른 유대인, 부도덕한,우상을 숭배하는 사마리아 여자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이 변화의 때가 오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4:21, 23). 우리에게는 여전히 감리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등의 우리가 좋아하는 ‘예배 처소’가 있지만, 이제 우리 모두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예배하고 있음을 인식해야하고 그 인식의 거대한 흐름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우리의 예배는 예수님을 우리 주 그리스도, 메시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네 그분이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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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