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71번 이사야 55장
(인도자)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회중)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인도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회중)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인도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회중)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인도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회중)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인도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회중)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1-3)
(인도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회중)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인도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회중)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다같이)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6-7)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말씀 _ 요한복음 6장 24~35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가버나움에서 예수를 찾는(zeteo, 현재시제) 무리들에게서 시작됩니다.
무리들은 예수께서 떠나신 후에 계속 남아 있었고,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이 없이 떠날 때에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무리는 예수께서 어떻게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 어떻게 가셨는지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일행과 합류할 기회를 찾으며 도착하는 배에 올라탔고 마침내, 그들은 예수를 찾았습니다.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그들이 마침내 예수님을 따라잡고, 예수님께 정중하게 묻을(인사할) 때(6:25) 우리는 그들 모두가 진정으로 호기심이 많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랍비’의 동선을 놓치지 않고, 그를 찾는데 시간을 투자했고 그들의 끈기로 ‘랍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리들의 인사와 질문에 예수님께선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들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26절)
무리들에겐 생각지도 않은 대답이요. 당황스러운 말씀이겠지만 놀랍게도 그것이 정곡을 찌르는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진심 또는 숨겨진 ‘의도’라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무리들의 행동을 신학자 Alicia D. Myers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옳을 일을 하면서도, 우리의 견해가 예수의 가르침에 의해 다시 형성될 때까지 우리가 불충분한 이유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수조차 있다.”
Alicia D. Myers는 의도적으로 “잘못된 이유들”보다는 “불충분한 이유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뒤쫓아 온 이 무리들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위해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고 처음 따르기 시작했었습니다(6:2).
예수는 이 무리에 속한 사람들을 고치셨고, 그 다음에 그들을 먹이셨고, 그가 불가능할 것을 제공할 수 있음을 그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제자들을 시험하셨습니다.(6:5-15).
이러한 예수의 능력은 그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어떤 통치자, 관료나 황제 이상으로 예수는 그 날에 그들을 위해 충분한 공급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께서 그들의 임금이 되길 원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의 충성심을 보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리는 다음날 더 이상 그곳에 계시지 않는 예수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비록 무리들이 예수를 “랍비”라고 부르고 있지만 예수가 제공하는 계시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3:2, 4:30). 예수는 그들에게 그가 기적적으로 바다를 건넌 것에 관해 말하기보다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너희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다. 썩어가는 음식을 위해 일하는 것을 멈추고, 인자가 너희에게 주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6:26-27, 저자의 번역).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기보다는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해서 그들의 충성심에 담긴 결점들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무리들을 신뢰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에 2:23-25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처럼, 예수님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무리가 그를 따라왔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일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유는 불충분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무리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 또는 요청에서 시작됩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오라, 그러면 너희는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를 따르게 됩니다. 이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는 그 응답 속에서 우리의 이유가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이유, 우리의 의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유와 의도를 넘어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계십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이 광야에서 매일의 만나를 그들에게 제공하길 원하고 있습니다.(6:30-34) 그 이유는 “선지자, 즉 세상에 오실 분”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그들의 정의가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지요.(6:14;참조, 신명기 18:15-11)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표적을 반복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그들의 비유는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
예수는 새로운 모세가 아니며, 더 많은 만나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선지자와 지도자였고, 하나님이 그를 통해 훌륭한 표적들을 행하셨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지만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더 큰 선물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고, 그에게 머물러 있으며, 그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 다시 말해서 그를 소비하는(먹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제공하는 생명에 참여하도록 제공된 생명의 빵(떡)이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
예수님은 자신을 “참 떡”(6:32)이라고 부르셨는데, 이는 1:9에서 그가 “참 빛”이신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음식"과 ‘일’에 대한 논의는 3:19-21과, 4:32-35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가르침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제자들이은 하루를 여행하고 시장할 때에 예수님께 음식을 드시라고 권하지만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4:34)라는 신비로운 말로 제자들을 깨우치셨습니다.
사실 이러한 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복음서를 반복해서 읽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이런 연관성을 만들기 시작하고,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더 원숙한 그림을 함께 완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우리의 매일의 필요를 알고 계시지만,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우리의 필요에 정신에 팔려서, 하나님이 하고 계시고(1:51),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길 원하시는(14:12) “더 큰 일들”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일시적으로 먹고 살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영속적이며 영원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우리가 우리를 향한 기대가 다시 형성되도록 허락하고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을 주는 떡을 받아들일 때, 비로서 시작됩니다.
찬양 _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