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35번 성령강림(1)

(인도자)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회중)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 11:2)
(인도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회중)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인도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회중)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17상)
(인도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회중)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인도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회중)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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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95장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6장 47~5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관한 뉴스가 날마다 쏟아지고 있습니다.

가상화폐(假想 貨幣, virtual currency 또는 virtual money)는 지폐나 동전과 같은 실물이 없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특정한 가상공간(vitual community)에서 전자적 형태로 사용되는 디지털 화폐 또는 전자화폐로 암호화폐는 가상화폐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12년엔 유럽중앙은행(ECB)이 가상화폐의 정의를 내렸다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가상화폐란 ▶정부에 의해 통제 받지 않는 디지털화폐의 일종으로 ▶개발자가 발행·관리하며 ▶특정한 가상 커뮤니티에서만 통용되는 결제수단입니다.

2009년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하자 이를 가상화폐로 부른 건 아마도 정부의 통제 밖에 있으면서 소수의 전문가끼리만 알던 디지털 기반의 화폐란 뜻에서였을 것이라고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가상화폐 뉴스가 등장한 것은 2017년부터입니다.

그런데 요즘 가상화폐에 관한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2030, 청년이라는 단어입니다.

"코인 폭락 좀 막아달라" 가상화폐 곤두박질…2030 '분통’ - 아시아경제 5월 22일

벼락거지 면하려다 1년치 연봉 다 날렸다…2030 '패닉'  440조 빚더미...2030이 위험하다. 한국경제 5월 22일

가상화폐에 울고 웃는 2030..."자나깨나 코인 생각" YTN 5월 21일

이런 사태를 두고 또다시 2개의 상반된 이야기로 분열이 일고 있습니다. 누구의 책임인가?

먹고사는 문제는 정말 쉽지않은 문제입니다. 그 누구도 쉽게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기도 합니다. 가난의 무서움은 목숨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목숨을 잃기까지 비참함과 치욕, 상처와 수치로 점점 삶을 피폐하게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자가 되려는, 아니 부자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저 풍족하게 남 부럽지 않게 살고싶어서 시작된 20대와 30대의 가상화폐 투자는 현재로서는 비극으로 끝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물론, 가상화폐를 통해 누군가는 막대한 돈을 벌었고, 또 누군가는 몇배의 이익을 남겼으며, 또 누군가는 성공하였기에 오늘까지 가상화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래의 그림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1918년, 미국 미네소타(Minnesota)주 보베이(Bovey) 라는 작은 탄광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엔스트롬(Eric Enstrom; 1875~1968)입니다.

어느 날 몹시 지쳐 보이는 야위고 남루한 한 노인이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사진관에 들어와 잠깐 쉬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노인은 사진관에 들어와 몹시 배가 고팠던지 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소박한 빵과 수프를 앞에 두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사진사인 엔스트롬은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노인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흑백사진을 보고 엔스트롬의 딸, 로다 앤스트롬 나이버그 (Rhoda Enstrom Nyberg; 1917~2012)도 큰 감동을 받아 이 사진을 유화로 그렸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은혜(The Grace)’입니다.

엔스트롬은 이 사진을 통해 당시 세계 제1차 대전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감사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 사진을 미네소타 사진전에 출품하였고 그 해 미네소타 주의 사진으로 선정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밀레의 '만종'입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년 (만종:1857-1859)

밀레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만종'은 황혼 무렵에 한 남자와 여자가 삼종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삼종기도는 하루에 3번 종이 칠때마다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1865년에 밀레는 “만종은 옛날에 할머니가 들에서 일하다가도 종이 울리면 일을 멈추고, 가엾은 이들을 위해 삼종기도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음을 생각하면서 그린 그림이다.”라고 설명을 남겼습니다. 하루 3번 중 마지막 기도, '만종'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이 시대에 얘기한다는 건 너무도 무모해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알고 계시지요?

큰 소문이 예루살렘 이스라엘에 무섭게 퍼져나갔습니다. 말솜씨 좋은 이들을 통해 오병이어의 기적은 생생하게 때로 더욱 과장되게 퍼져나갑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찾아 많은 무리가 움직입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 예수님께서 기적 이후에 무리를 피해서 떠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들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 26절)

무리는 예수님께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빵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다시 내게도 베풀어 달라. 그래서 당신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다시 보여 달라.고 그들의 눈빛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태복음 4장 1~4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기도할 때마다 돌이 떡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에 이렇게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는 곳마다 기도하여 돌이 떡이 된다면?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무리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빵을 내려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된 빵을 내려 주신다.” (요한복음 6장 32절)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복음 6장 35절)

예수님께서 진정한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찾아 헤메이던 그 빵은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의 빵이 됩니다. 육체의 배고픔을 채운다고 하여 사람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아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이 많아도 허기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OECD국가 중 한국은 이제 7위로 발돋움하였습니다. 가상화폐 거래량이 우리나라가 세계 2위라고 합니다. 미국이 1위이니, 실질적으로는 우리나라가 가상화폐 거래 1위라는 이야기가 된다고도 하고 있습니다. 다르게 해석해 보면 우리나라가 그 만큼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사진 속 노인처럼 빵 한 조각과 수프 한 그릇으로 만족할 수 없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진 속 노인처럼 신실한 모습으로 기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허기진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밀레의 그림 속 삼종이 울릴 때마다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요?

하루에 3번 종소리가 울립니다.

첫 번째 종소리, 두 번째 종소리, 세 번째 종소리. '만종'의 기도는 가엾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라는 밀레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오늘본문말씀 6장 ‘진실로’로 시작되는 3번째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요한복음6장 47절)
“내가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인데,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며,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내 살이며, 내 살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톨스토이(Leo Tolstoy, 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소설에서 3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이 된 천사 미하일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첫 번째,

너무도 가난하여 찌들어 살던 부부에게 대접할 것이라곤 남은 빵조각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차마 미하일을 내보내지도 못하고, 그들의 식사를 미하일에게 건넵니다. 천사, 미하일은 깨닫죠. 사람에겐 연민, 사랑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한 신사가 일년 동안 신을 튼튼한 장화를 주문합니다. 그는 으름장을 놓으며 으스대며 장화를 주문합니다. 그 때 미하일은 그날 밤 자신이 죽게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를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육체를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요.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죽을 줄만 알았던, 태어나자 마자 부모님을 모두 잃은 쌍둥이를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미하일은 결국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감을, 어머니는 자녀들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몰랐습니다. 부자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으로 있을 때 미하일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의 아내 마음에 있는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고아들은 자신을 챙길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낯선 여인의 마음에 있는 사랑으로, 그들을 가엾게 여기는 사랑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들이 잘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열려주시지 않으셨고, 사람들이 협력하며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모두에게 그들 자신과 모두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심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십니다. 이것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생명의 빵이 되시고, 그를 통해서만이 다시는 배고프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우리를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하기에,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사랑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누군가의 사랑의 덕분으로 살아남았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계획해서가 사람 안에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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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