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47번 시편 105편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회중)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인도자)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회중)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인도자)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회중)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인도자)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회중)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인도자)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회중)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1-11)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말씀 _ 요한복음 6장 1~2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부터 5주간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71절까지 매우 긴 말씀입니다. 그리고 6장부터 요한복음에서 전하는 예수님 두 번째 공적 사역이 시작됩니다.(6:1-10:42). 물론 그 시작은 2:1-5:47에 이르는 첫 번째 공적 사역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두 사역 모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예수의 신적 영광을 보여주는 갈릴리에서의 기적들로 시작하고 있지요.
2장 1-11절에서 예수님은 항아리의 물을 풍성한 포도주로 변화 시키는데, 그것은 예수의 영광을 나타낸 첫 번째 표적입니다.(2:11).
6장 1-15절에서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많은 사람들을 위한 풍성한 양식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 다음에 물 위를 걸으시는 기적이 뒤따릅니다.6:16-21). 그것은 예수의 신적인 영광을 나타낸 신의 현현(theophany)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1-4은 배경을 제공하고 6:5-15은 급식 기적과 그것의 즉각적인 여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6:16-21은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 떠나는 모습과 그 후에 예수께서 물 위에서 “나는 ∼이다”라는 계시를 통해 제자들과 합류하는 모습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 해안가 근처의 산 위에 앉아 계십니다. 유월절이 “가까웠지만” 예수는 요한복음 5장에서의 마지막 만남 이후에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려고 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는 “병” 또는 “약함”(무력증, 5:5)으로 인해 벳세다 못가에서 38년 동안 꼼짝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처음 고치신 요한복음 5장에서부터 사람들이 데려온 “약한 자” 또는 “병든 자”(tōn asthenoutōn)를 여전히 치료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리와 함께 계실 때, 시간이 흘러갑니다. 지난 주 말씀을 되새겨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빌립을 부르십니다.
“이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빌립은 1:43-44에서 예수께 “발견되고” 부르심을 받은 처음 제자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사실 빌립은 안드레와, 요한복음 6장 뒷부분에서 대변자 역할을 하게 될 시몬 베드로와 같은 고향 출신입니다. 예수는 지금 1:43에서처럼 빌립에게 명령을 하기 보다는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느냐고 묻지 않고 그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빌립이 고민하는(또는 당황해하는!!) 그 순간에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가 빌립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시험하는(peirazōn) 것이라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친히 어떻게 하실지 이미 알고 계셨다”(6:6).
이 시험 요소는 종종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데, 공관복음 전통에서 볼 때 예수께서 광야에 계실 때부터 시험이 마치 마귀의 영역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마 4:1; 막 1:13; 눅 4:2 참조).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도전하십니다. 예수는 그 믿음이 얼마나 진실하고 견고한지를 알기 위해 그 도전을 계속 밀어붙이십니다.( 6:22-71; 8:31-59; 13:36-38).
“너희는 나를 보았지만 아직도 믿지 않고 있다.”(6:37)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변화의 움직입니다.
그리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나 우리를 알고 계시고 그런 우리를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하다하여도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실 때 충분한 믿음으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다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것을 그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주님은 주님의 능력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보십시오! 오천명의 무리는 빵과 물고기를 배부르게 먹었고 그 남겨진 것을 모으니 12 바구니에 가득찼습니다!
그런데 이 표적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를 억지로 붙잡아 왕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었고 예수님은 아직 제자들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왠지 알 수 없으나 제자들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에 가버나움으로 가기로 합니다. 그들은 배를 탔고 가버나움을 향해 노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강풍이 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호수 저편에서부터, 호수 위를 걸어, 배를 향해 오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O'Day (John, The New Interpreter's Bible)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몇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22절과 마가복음 6장45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바다를 건너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은 자발적으로 바다로 간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제자들의 배가 거친 바다를 횡단하는 것을 바라보신다(마태14:24;마가 6:48). 반면에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의 관점에서 그 여행이 서술된다. 따라서 요한복음에서 이야기의 초점은 제자들의 경험에 있고, 요한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그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pp. 595-596]
20절에서 예수의 말은 6장 16-21절의 기적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세 기사 모두에 등장한다(마태 14:27; 마가 6:50). 그러므로 이 말은 구전 전승의 공통자료에 속하지만, 네 번째 복음서의 기독론 적인 맥락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ego eimi를 NIV와 NRSV에서처럼, “나다”(it is I)라는 단순한 신원확인 문구로서 번역해서는 안 되고, “나는 …이다”(I am)는 절대적 신원확인 문구로 번역해야 되는 훌륭한 사례이다. 예수께서는 물위를 걸으실 때, 제자들에게 “나는 …이다”(I AM)는 신적인 이름으로 그 자신의 정체를 밝히신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이런 용법의 배경은 70인경의 제2이사야서에서 발견된다(이사야 43:25; 51:12; 52:6). 네 번째 복음서기자는 예수를 제2이사야서에서 말씀하시는 여호와처럼 묘사한다. ego eimi에 대한 이런 독법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두 번째 말씀인 “두려워하지 말라”에 의해 입증된다. 이 표현은 또한 제2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 말하신 것이다.
이 말들은 구원신탁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두려움을 종식하기 위해 말해진 위로의 말이다(예를 들어, 이사야 43:1; 44:2,8). “두려워하지 말라”는 또한 신 현현 기사에 반드시 들어있는 요소이다(예를 들면, 창세기 15:1;마태복음 28:5; 누가복음 2:10). 20절에서 예수의 말씀은 그의 바다를 걸으심이 곧 신의 현현이고, 이 “신성의 명시”가 제자들의 두려움의 원천임을 확인한다. [pp. 596]
제자들은 그들을 향해 물 위를 걸어오는 예수를 볼 때 만 “두려움에 빠진다”(6:19). 다르게 설명하면 강풍과 큰 물결에도 제자들이 ‘두려워’했다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자들의 ‘두려움’만을 들여다보고 정작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정작 보고 들어야하는 음성이 “예수님” 그 자체에 있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은 단순한 발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주장입니다. 요한은 예수의 말씀의 계시적인 특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장면을 상상할 때, 우리는 제자들과 함께 이 현현, 또는 신 현현, 즉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등장을 보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두려움, 다른 말로 염려와 걱정, 근심이 아닌 ‘두려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6:1-21에서 우리는 시험을 받고 또 거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많이 공급하시고, 그가 우리들의 제한된 정의에 굴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남은 빵을 가지고 예수보다 앞서 가면 어둡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 휩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면서,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나아갈 길을 제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우리가 통제하고 배 안에 계시게 하실 수 있는 분으로 요구하기 보다는, 오늘 만난 요한의 예수님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존재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길 바랍니다.
찬양 _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