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6장 목소리 높여서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02번 나라사랑

(인도자)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회중)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인도자)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회중)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인도자)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37:22-23)
(회중)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인도자) 무리가 그들의 칼을 펴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회중)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인도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회중)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인도자)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슥 9:10)
(회중)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인도자)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같고
(회중)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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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말씀 _ 요한복음 6장 41~5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반응하는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됩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41절)

여러분은 유대인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기원을 요셉과 마리아로부터라고 이해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출신으로만 보았습니다. 이들은 부적절한 믿음이나 부적합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었던 대로 생각하고 믿었을 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셨고(44절),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왔고”(46절),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51절)고 설명하시며 아버지께로부터 듣고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든지 다 내게로 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로부터 배우고 계십니까?

아버지께로부터 듣고 배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말씀의 주제는 2가지입니다. 이끄심과 영생입니다.

예수께서 말하시다,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44a절)

예수께로 “이끌림” 받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끈다는 뜻의 단어 엘쿠오(elkuo)는 요한복음서에 다음과 같이 5회 사용됩니다.

∙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이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비리니 그 종의 이름을 말고라.
∙21: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즉, 끌어올릴 수) 없더라.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께 이끌리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그물에 끌려 해변으로 나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러한 그림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고기(그리고 우리도?)는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끌려간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이러한 그림에는 자유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이는 낚시꾼이 매력적인 미끼로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도록 유혹하여 잡는 것과는 다르게 생각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물고기를 “끌어당기는” 이미지에서 물고기는 아무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어부들이 할 뿐입니다.

여기서 요한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관한 것이 아니고 (또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힘이 아니면, 우리는 예수에게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 끼리 투덜거리지 말아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낚아 예수께로 끌어당기시는가?(44)

예수님은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라는 이사야 54:13a의 말씀을 인용하시고 거기에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를 보충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끌기 위해 사용하는 여기에서 제시된 방법이 바로 교육입니다.

“제자”로 단어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메쎄테스mathetes”는 “배우게 하다”(manthano)와 관련이 있습니다.(두 단어 모두 “수학”[mathematics]과 관련이 있다). 제자는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자는 그리스어(語) '아포스톨로스(apostolos)'에서 유래하는데, 이 말은 '보냄을 받은 자' '대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사도’라고 말하고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래 ‘제자’가 배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자는 본래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배우는 사람들이 다시 꼭 기억해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그것을) 들을 수 있느냐?”

NRSV는 “받아들이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44절과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6장 60절의 제자들처럼 될 것입니다. 들었지만, 듣고 있지만 말씀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렵다는 것은 말씀이 아니고 자신이 받아 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시는 것처럼 늘 신기하고 오묘하며 예상을 뛰어넘고 세속적이지 않는 영적인 것이지만 비유로 말씀하셔서 어렵지 않습니다. 단지 그 말씀은 우리가 언제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입니다.

6장 60절의 말씀도 “왜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기를 거절하거나 예수를 믿기를 중단할까?”라고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계속 믿는 것은 진짜 기적이라는 선언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교회와 관련을 맺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교인들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는 것에 대해 수 없이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 동안 그 교회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은, 시리아에서도 사도 바울 이후 계속하여 모든 집안의 장자가 목사가 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6장 60절에서 제자들은 누가 들을 수 있느냐? 반문하였지만 듣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를 안다는 것과 예수께로 나아온다는 것은 다른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 말하시다, 부활과 영생에 대해

6장에서 예수는 그가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다시 살리실 것(anistemi, 모두 미래시제이다)이라고 네 번 말하셨습니다(39,40,44,54절). 동일한 동사가 11장에서 나사로의 부활에 대해, 그리고 20장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영생을 얻는 것/가지는 것”을 4회 말씀하셨습니다.(40,47,54,63절). 그런데 여기 사용된 동사(echo=to have)는 모두 현재시제입니다.

그러니까 영생은 현재 소유하는 것입니다.

부활 생명은 미래의 어느 때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이 말하는 영생은 죽음 후의 “영생(부활생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다음과 같은 것을 통해서 오게 됩니다.

(1) 예수를 보고 믿는 것(40, 47절)

(2) 예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54절)

(3) 예수의 말씀을 듣는 것(68절).

다시 말하면 “영생”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관계는 보고 믿는 것을 통해, 지금 시작되며(모두 현재시제임),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과 갈라놓지 못한다는 말씀이 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지금 시작되는 관계가 영원히 계속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과의 관계는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께로부터 배우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그 순간부터 ‘영원’과 ‘영생’의 기쁨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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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