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113번 자연과 환경 (환경선교주일)
(인도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회중)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상)
(인도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회중)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인도자)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24:1)
(회중)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롬8:19)
(인도자)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회중)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인도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회중)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인도자)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8:21-23)
(회중)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다같이)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9장 26~34절
얼마 전 중국의 소림사에 관한 다큐를 보게 되었습니다. 496년에 세워진 소림사는 약 1500년의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소림사 승려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3년에 한번 소림사에서는 시험을 치리는데요. 무술과 불경,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하여 정말 많은 이들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소림사의 제자가 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평생의 제자, 소림사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그들은 수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소림사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그 면면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겠지요.
오늘 말씀의 주제가 ‘제자’입니다.
만약, 교회를 다니기 위해 시험을 통과해야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시험에 통과해야 ‘교인’이라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9장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금은 몇 살인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 보셨습니다.
“누구의 죄 때문에 이 사람은 맹인이 되었을까요?” 누군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죄 때문에?” 당시에 장애가 있다는 것은 부정한 사람으로 생각되었고 그의 죄, 태어나기도 전에 얻은 장애는 그 부모의 죄 때문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율법대로 제물을 드리는 유대인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흠이 없는 것을 제물로 드려야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한 사람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흠이요. 부정한(거룩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맹인으로 태어날 수 밖에 없었던 가련한 사람, 이 사람을 향한 두 개의 시선이 드러납니다.
첫째, 그동안의 관습과 생각에 가리워져 그저 맹인으로 바라보는 시선, 이러한 시선을 우리는 편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둘째, 맹인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 바로 예수님의 시선입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 말씀을 그저 한 문장으로 편협하고 왜곡하여 해석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시는 그 이후의 행동과 연관시켜 해석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행하시는 그 일을 통하여 그가 다시 눈을 떠 변화된 삶을 살게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져 그는 눈을 떠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일을 사람들은 보았고, 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에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너의 눈이 어떻게 보게되었느냐?”, “안식일에 누가 이 일을 한 것이냐?”
그들은 보았고 들었으나 보지 못했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눈을 감았고 귀를 막았습니다.
맹인이었던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그가 내 눈에 진흙을 발라주고 실로암 연못에 가 씻으라 하시니 제가 그 물로 씻으니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정말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것이냐?” “너희 부모를 데려오거라, 우리가 다시 물어보아야하겠다.”
“진정 너희의 아들이 맹인이었느냐? 그렇다면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
“저희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것이 분명하나 지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가 알 것입니다.”
그러자 맹인이었던 그 사람이 다시 대답합니다.
“제가 이미 말을 하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십니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그들이 화를 내고 욕을 하며 대답합니다.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그렇습니다. 모세의 제자를 자처하는 그들은 그들의 생각대로 보고 듣고 말하며 “진실” 앞에 서서 보지도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
몇 번을 묻는 그들을 향해 맹인이 잠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정말 알고 싶은 것인가? 그의 제자가 되려고 이러는 것일까?’
제자[弟子, disciple]는 스승으로부터 가르침과 훈련을 받는 자를 말합니다. 제자는 단순히 배우고 학습하는 자가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을 가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깨달으며 자신의 삶의 지표로 삼아 스승을 쫓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곧 스승의 철저한 추종자가 제자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스승을 따라, 그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테테스(μαθητής)’는 헬라어로 ‘제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초대교회 안디옥에서는(35~107년) ‘순교자’와 동의어로 사용하였습니다. 헬라어 ‘말투스(μάρτυς)’는 증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증인이 곧 제자라는 의미이고 실제로 영어로 순교자(The Martyrs)가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하십니까?
마태복음 10장 1~4절에는 예수님의 12제자가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님과 12제자,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제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 요한, 마태, 야고보를 포함한 12사도는 우리가 감히 흉내내거나 그와 같을 수 없겠지요. 예수님의 12제자는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 순교하였습니다.(커다란 의미에서 보면 사도 요한 또한 순교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제자라는 고백을 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소림사에 들어가기 위해 3년에 한번 있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십년 이상의 수행을 하고 시험에 통과하여 소림사의 제자가 되듯이 우리도 그와 같다면? 우리들의 교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 중요한 부분이 숨겨져 있습니다.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맹인이었던 이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이 사람을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건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사람, 맹인이었던 이 사람을 ‘그의 제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9장 7절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 사람은 가서 씻고 눈을 떠서 보게 되어 왔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의 말씀대로 그대로 따랐습니다. 요한복음 9장 7절까지 맹인이었던 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는 그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맹인이 눈을 뜨는 이 엄청난 사건을 요한은 이렇게만 기록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가서 씻고 눈을 떠서 왔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행하는 사람을 ‘그의 제자’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맹인이었던 사람과 예수님께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분이 누구십니까? 내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주십시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다.” “주님, 내가 믿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주님, 내가 믿습니다.”
믿는 사람이 ‘그의 제자’입니다.
그를 믿고 그의 말씀대로 따라 사는 사람이 ‘그의 제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닌다는 건? 바로 그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의 제자’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가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6:9)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하는 우리가 ‘그의 제자’입니다.
오늘, ‘그의 제자’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
찬양 _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