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8장 거룩거룩거룩 전능하신 주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7번 사순절 제4주
(인도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회중)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인도자)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회중)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인도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시 33:12-16)
(회중)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인도자)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요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회중)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시 33:20-22)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말씀 _ 요한복음 9장 1~12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요한복음 9장 1~41절까지 전체가 본문 말씀에 해당됩니다.
A. 배경(9:1-5)
B. 기적적인 치유(9:6-7)
C. 맹인을 심문하다(9:8-34)
1. 이웃들과 지인들의 질문(9:8-12)
2. 바리새인들의 예비 심문(9:13-17)
3. 유대인들이 그 사람의 아버지에게 한 질문하다(9:18-23)
4. 유대인들이 그 사람을 두 번째로 심문하다(9:24-34)
D. 맹인이 영적으로 보고 믿게 되다(9:35-41)
요한복음 8:12에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9:5은 8:12의 일부가 반복된 것입니다. 떡과 물고기로 오천 명을 기적적으로 먹이신 것이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심을 암시하는 것처럼(6:1-14, 35-65), 지금 여기서 예수님 어둠 속에 있는 그 한 사람의 눈을 어루만지시고 고치시며 자신이 빛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9장의 전체 주제입니다.
눈먼 한 사람을 통하여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보지못한 눈먼 사람을 바라보며 제자들이 질문합니다.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부정한 것과 정한 것, 유대인들의 기준입니다. 바르고 좋은 것, 흠이 없고 깨끗한 것, 그 외에 모든 것은 부정한 것이 그들의 기준입니다. 보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들은 유대인의 기준에서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장애를 가진 이들은 그들의 ‘죄’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과연 누구의 “죄” 때문일까요?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들의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눈먼 이들을 만난 제자들은 다른 질문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은 다른 것에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다른 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요. 우리들의 생각이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기를 ‘지혜’를 구하는 사순절의 기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으로 눈먼 이 사람은 이미 구원함을 받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예수님을 통하여 빛을 보게되는 것보다 어쩌면 이 예수님의 말씀이 그와 그의 부모에게 구원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였을까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그의 삶을 갉아먹는 이 숱한 질문들이 그를 어둠에 가두고 그 어둠이 점점 그를 차지해 가고 있었겠지요. 그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구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기적은 딱 두절에서만 전해지고 나머지는 모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6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그 침으로 진흙을 이겨 그의 두 눈에 바르셨다.”
7절입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하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가서 씻고 눈을 떠 보게 되었다.”
요한복음 대부분의 본문들에서처럼, 맹인의 치유는 문자적인 차원이 있을 수 있고, 상징적인 차원이 있을 수 있있습니다. 상징적 차원은 보지 못함,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계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39절은 이 사건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라 함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새로운 어떤 것을 배우거나 경험하는 일에 개방적이지 않은 사람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고집하는 사람들, 결코 다른 것은 바라보지 않으려는 사람들 모두 ‘맹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우리가 안다”가 맹인들의 “나는 알지 못한다”와 매우 자주 대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빛’이 필요합니다.
요한복음의 치유는 침으로 갠 진흙(pelos)을 사용하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한다는 점에서 독특하지요.
실로암 못에서의 씻음
우리는 실로암 못에서 씻는 것이 세례와 같은 성례와 어떤 연관이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눈먼 사람은 날 태부터 맹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날 때부터 죄인이기도 합니다.
치유를 위해 씻는 행동은 열왕기하 5:10-14에서의 나아만의 치유를 생각나게 합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말했고 그는 씻었고 치유되었습니다.
요한은 요단강이 아닌 ‘실로암’의 의미를 덧붙여 전하고 있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보냄을 받은 사람”(apestalmenos)이란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름의 의미는 분명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우선, 요한복음 도처에서 예수님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51번). 진흙과 침이나 물이 맹인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보냄을 받은 분”이신 예수님께서 고치십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를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물 안에, 물과 함께 물 아래에 계신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계시하기 위해 보냄을 받으신 것처럼, 눈먼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을 계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보냄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의 많은 곳에서, 예수님께 나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유형의 중재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안드레가 베드로를 데려오고,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려오고, 맹인이 바리새인들을 데려오고자 시도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공하고, 어떤 이들은 성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눈먼 사람이었던 그가 말합니다. “그 분이 내 눈을 보게하셨소”
그는 처음에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자신을 고쳤다고 말합니다(11절). 후에 그는 예수를 “선지자”라고 부르지요(17절). 마지막으로, 그는 예수가 죄인일 리가 없으며(31절),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요한복음서 전체의 주제는 “예수가 어디에서 오셨는가?”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보게 되자 그를 바리새인들에게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계속 묻습니다. “그가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그가 말합니다. “어떻게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를 수 있는가? 그가 하신 일을 보라! 당신들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하나님은 죄인인 사람들을 듣지 않으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치유한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 나이다! 그러니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것이 틀림없다.”
그는 바리새인들에 의해 쫓겨납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을 만나게 되지요.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가 묻습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주님, 내가 그 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님께 꿇어 절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게하고 보는 사람들은 못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설마, 우리도 눈먼 사람들이란 말은 아니겠지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들이었다면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는 ‘우리가 본다’고 말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이 사순절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 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208장 내 주의 나라와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